솜나물의 선택이 옳을 거야

2025. 4. 30. 송화산

by 풀잎

지난겨울부터 소나무가 많은 산길은 가능한 피해야 했다. 운이 나쁜 날엔 숲 속에서 나무를 베어내는 전기톱 소리와 비릿한 약 냄새에 어지러웠다. 남산의 많은 길들이 그러했다. 때론 못 들은 척 걷기도 했다. 오늘은 경주의 산 중에서 소나무재선충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것 같은 송화산에 일부러 간다. 지나며 본 산은 폐허가 따로 없었다. 한 번은 제대로 보아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금장대가 보이는 버드나무숲에서 출발한다. 삐죽삐죽한 열매를 맺은 버드나무는 어느덧 초록의 물기를 잃고 회색빛 도는 잎이 푸슬푸슬하다. 건조한 해의 버드나무는 봄 한철 짧게 아름답다.

볕 좋은 자리를 다투는지 아까시나무와 등나무가 얽혀 있다. 등나무 잎이 빼곡히 덮은 아까시나무지만 흰 꽃을 주렁주렁 달았다. 두 나무의 얽힘이 정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전깃줄도 나무줄기로 만들어버린 등나무의 왕성함에 혀를 내두르다가 우아하게 늘어뜨린 보라색 꽃송이에 바로 얼굴을 바꿔 환하게 웃는 나. 이중성은 너나 나나 매한가지다.


길을 건너 송화산으로. 산은 불과 일 년도 안 돼 민둥산이 되었다. 하늘이 훤히 뚫린 산길에 그나마 아까시 하얀 꽃이 날린다. 어, 뭔가 다르다. 아까시꽃도 있지만 다른 꽃도 있다. 아래로 늘어지는 꽃차례가 아니라 옆으로 뻗는 꽃차례다. 쪽동백나무 꽃이 조로롱 피어 환하게 웃는다. 깨끗한 하얀 꽃잎 안에 노란 꽃밥이 살포시 들어앉아 있다. 잠시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앞엔 쪽동백나무 꽃만이 남는다. 예쁘다!


쪽동백나무 꽃


아까시 꽃, 쪽동백•때죽 꽃, 등꽃이 향기를 다투는 이 계절은 참으로 호사스럽다. 여기에 덜꿩나무 오동나무 꽃 향까지 더해지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향기의 사치를 누리고 싶다면 늦봄의 숲으로 가라! 다만 비염 때문에 나는 향기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계절이라 호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함이 아쉽다.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는다. 이 무슨 곁불 신세인지 한탄하면서도 좋다, 한다.


살아남은 두릅 싹이 뾰족한 가시를 앞세우고 잎을 폈다. 가시는 아직은 보기에만 사나운데 외려 발아래 길이 사납다. 먼지가 폴폴 날린다. 송홧가루 노랗던 길이 이제는 흙먼지 폴폴 날리는 길이 되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걷는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죽은 소나무가 여전히 많다. 오솔길이었던 숲에 차가 떡하니 들어서 있다. 멀리서 위잉 소리도 희미하게 들린다. 사이로 버국, 버국, 뻐꾸기가 왔나 했는데 '뻐꾹'이 아니고 내다 만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버국. 설마 벙어리뻐꾸기? 아니면 이곳엔 흔한 후투티? 새의 모습 보이지 않아 짐작만 해본다.


새들은 박새만 요란하고 조용한 가운데 나비들이 제 세상 만난 듯 활발하다. 소나무 없는 산엔 호랑나비가 왕인가 싶게 많다. 태어나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나비는 처음 본다. 호랑나비 산호랑나비 암끝검은표범나비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다가 떨어지고 그 사이로 부전나비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왕자팔랑나비와 부처사촌나비도 나온다. 내가 아는 흔한 나비 대부분이 총출동! 나비들은 볕 좋은 임도 길을 좋아한다더니 나무가 없어 훤해진 산길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나비들 노는 것을 웃을까 울을까 망설이며 바라보았다.


큰갓산에서 옥녀봉을 향해 걷는다. 이 길은 더 엉망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길가의 풀들이 가엾다. 그 길에서 솜나물을 보았다. 솜나물인데 열매를 맺었다. 참으로 이상한 조합이다. 분명 솜나물은 봄에 열매를 맺지 않고 꽃만 피운다. 가을형 꽃이 폐쇄화로 꽃대를 올려 자가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알았고 그런 것만 보아 왔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 속인지. 계절을 착각했나? 아니다, 꽃잎을 열었던 흔적이 보이고 잎도 솜털 많은 봄잎이다. 옥녀봉을 내려가 동대 병원 근처에서도 보았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식물이 위기 앞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송화산은 몸살을 앓고 있다. 솜나물이 있는 곳에서 옥녀봉 아래까지 곳곳이 2차선 도로처럼 뻥 뚫렸다. 참나, 시는 이참에 진짜 길을 내려는 것 같다. 길을 낼 것이니 탐방을 제한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솜나물 열매(보통은 가을에 볼 수 있음)


언덕 높은 곳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저자가 도심에 홀로 선 나무를 멋지다 말했더니 그런 생각은 자유지만 왜 홀로 서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선생께 혼났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내 앞에 놓인 풍경이 그렇다. 솜나물은 가을에 다시 꽃 피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끔 타가수분으로 열매 맺어 종을 건강하게 이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하필 위기의 숲에서 열매 맺은 봄의 솜나물을 만나 식물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비를 보는 것과 비슷하게 마음이 복잡하다. 지능에 감탄해야 할지 터를 잃고 생존 위기에 선 너를 안쓰러워해야 할지.


그러나 이 길에서도 자연의 시계는 담담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괴불나무 사랑스러운 열매는 빨갛고 청미래덩굴 열매는 초록으로 싱그럽고 청띠신선나비는 낡아 날개의 빛을 잃고 청개구리는 오수에 든 듯 고요하다. 나는 방울비짜루 꽃을 보고 기뻐한다. 꼬물꼬물 애벌레를 징그럽다 하지 않고 귀엽다며 본다(이런, 천지개벽).


옥녀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울창한 초록숲이다. 아, 이제야 숲을 걷는 것 같다. 벚나무 숲에서 초록 샤워로 흙먼지 낀 마음을 씻는다(실제 먼지는 백만 년 만에 가방과 신발까지 다 빨아 해결). 산철쭉이 숲에 간간이 색을 입히고 단풍나무 열매도 날개 끝이 붉어져 초록에 홍점을 찍는다. 평범한 숲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뜨거운 볕에 조금 힘이 들었는지 발이 무거웠다. 그런데 길 끝에서 아까시나무와 등나무의 합작품을 다시 만나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져 몸의 무거움을 잊고 황홀해지고 말았다. 아까시나무는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까시나무야, 흥청망청 넘실대는 초록과 낭창낭창 늘어진 흰 꽃과 보라색 꽃의 어울림은 너의 괴로움을 다 잊고 그저 나로 하여금 아름답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구나. 아름답다, 아름다워!

아까시꽃 타래를 뚝 따 꽃을 먹는다. 꿀이 많지는 않지만 맛있게 먹는다. 아까시나무 꽃을 따 먹고 아까시나무 잎줄기로 머리카락 돌돌 말아 곱슬머리를 만들어 놀던 어린 소녀는 자연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랐다고 한다. 입안에 들어온 꽃이 내게 저를 사랑하라 속삭인다.


등나무와 아까시나무
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