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의 소소한 만남 속에서 인간관계의 의미와 은둔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텃밭에는 구역마다 주인들이 있다. 아침마다 쵸코와 함께 가보면, 밭을 돌보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 밭 대각선 뒤편에는 이틀마다 오시는 주인이 있는데, 그의 밭은 언제 보아도 가지런했다. 지지대는 곧게 박혀 있고, 애플수박과 참외, 오이들은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처음엔 마주쳐도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잘 자란 열매에는 감탄을 건넸고, 내 작물에 대해서는 조언을 구했다. 상추는 꽃대가 피면 더 이상 잎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도 그에게서 처음 배운 농사 지식이다.
텃밭 앞 정자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개인사까지 이어졌다. 정년퇴직 후 무료함에 텃밭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이미 출가한 자녀들 이야기…. 말동무가 되어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사실 무료한 하루에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은 은근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지나온 삶에서 맺은 관계들조차 하나둘 정리되어 가는 나이에, 또 다른 관계를 더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자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하는데, 남자라는 존재는 관계 형성이 더딘 것인지, 아니면 은둔의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성자가 된 청소부』가 떠올랐다. 죗값을 치르려 천한 청소부 일을 하던 한 인도인이, 어느 순간 동굴 속으로 은둔해 들어간 이후 세상에 가르침을 주는 성자가 되었다는 스토리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타인과의 교제에서 얻는 것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한 삶 속에도 번뇌는 여전하다. 그러나, 그 번뇌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잃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세상과 단절한 채 은둔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은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