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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21세기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by 방향

취향 크레바스 편의 연재가 지연됨에 따라, 써두었지만 묵혀두고 있던 글 하나를 대신 나눠봅니다. 나중에 4부까지 연재가 진행될 때 쯤이면 이 글의 내용도 상당부분 바뀔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근대성의 예술로서의 소설에 대해 논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지나치게 유명한 서문은 오히려 모든 "모던"함이 해체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강렬하게 낭만적으로 읽힌다. 지금 같은 과도기적 시대를 살아가는 잘난척쟁이들에게 지금은 이미 포스트 모던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이후로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통합을 지향하던 세계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있다. 문명의 혜택은 널리 퍼지고 있으나, 그림자 또한 더욱 짙어진다. 과연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방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 같다. 그렇다면 행복은 제쳐두고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할지 생각해 보자.


전근대적인 야만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은 몰라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옛날엔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형식이 정해졌고, 소위 중세에는 종교가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세속화된 근대에는 소위 '시대정신'이란 것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때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소위 '개인성'이라는 것을 놓고 싶어지는 때가 오곤 한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현장으로 내몬다. 삶의 현장이란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지만, 스스로에게 내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묻게 한다. 그러다 보면 간혹 이 시대에 제대로 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모든 행동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배부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배부른 고민이라지만 그저 70억 인간종 동물 한 개체가 아닌, 한 개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통과 의례가 아닐까?


혹자는 말한다, 자신에게 스스로 서사를 부여하는 행위는 자의식 과잉적 행위라고. 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연약하고 언제고 비빌 언덕을 필요로 한다. 소위 거대 담론이라 하는 큰 정신적 흐름이 해체되고 산산이 쪼개져 개개인의 개인적 담론만이 남았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거대 서사가 아닌 스스로 부여하는 개인 서사뿐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는 어떤 것일까?


슬프게도 한 개인의 의지는, 힘은 너무나도 미약해서, 시대의 흐름과 같은 거대한 힘은커녕 그저 주변 사람 몇 명 정도의 영향력으로도 쉽게 망가지고 만다. 따라서 개인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원동력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구가하는 서사를 부여해야만 한다. 여력이 있다면,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에 따라 가족, 친구와 같은 공동체를 형성해서 일종의 공유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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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록: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2 : 방향의 의미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3 : 나를 위한 글쓰기

2부 취향 크레바스 - 1 : 쌈띵 온 열 마인드?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2부 취향 크레바스 - 3 : 입맛의 미학 (1)

2부 취향 크레바스 - 4 : 입맛의 미학 (2)

2부 취향 크레바스 - 5 : 입맛의 미학 (3)

2부 취향 크레바스 - ?? : 내 마음이라는 설원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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