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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띵 온 열 마인드?

낯선 나와의 조우

by 방향

여느 때처럼 강남 교보문고에 들어가며 어떤 한 권의 책을 새로이 만나게 될까 혼자 설레던 겨울날이었다.


한동안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서점과 동떨어져 있었지만 언제나 나는 망설임 없이 재밌을 것 같거나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책을 고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릴 적엔 장편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어느새 장편소설을 읽는 것의 피로함에 못 이겨 부담이 적은 단편집이나 시집, 그도 아니면 산문집을 주로 읽고 있던 시기였다.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서점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가장 만만하지만 오랜 기간 쌓아온 애정이 있는 만화 코너에서조차 나는 낯섦에 내가 읽어오던 시리즈의 제목조차 찾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다 할 수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던 나는 한국 소설 코너로 직행하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름만 들어봤으면 들어본 대로, 아예 처음 보면 처음 본 대로 집어들 수 있었을 책들이 그날따라 내게

네 취향 이게 맞아? 정말 재밌을 것 같아?

하고 따지는 듯했다. 나는 시집 코너와 다양한 전문분야 및 외국 서적 코너를 들락날락하면서 참담함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과 글들에 대해서 떠올리려 노력했다.


겉으로는 부정하는 척 하지만 나름 힙스터 기질도 있고 해서, 항상 어떤 책이건 간에 재밌어 보이면 장땡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취향과 별개로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곤 했는데, 이 날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원래 내가 좋아하던 것이 뭐였는지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스스로 규정하려 하고, 그렇지 못 하자 결국 나는 슬픈 감상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취향과 단절된 감각을 맛보면서 나름의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가 쌓아왔다고 여겨온 개인적인 책에 대한 취향을 상실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취향이란 것이 확고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 일부와 내가 단절되었다는 감각 그 자체가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의 연약함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대로 마음속에 지키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 분했던 것이다.


이 생각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계속 나를 괴롭혔다. 끝내는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나아갔다. 그걸 떨쳐버리기 위해 나는 한동안 내가 좋아했던 책들을 조금씩이나마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막연히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놀랍게도 취향에 대한 내 일시적 상실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는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언젠가는 오늘처럼 이렇게 글로 적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적당히 갈무리했더랬다.


이참에 좀 더 생각할 질문들을 나열해 보자.


1)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2) 어떤 요소가 나로 하여금 그걸 좋아하게 만드는 것인가?


3) 왜 그 요소가 좋은 것인가?


4) 내 취향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가? 이 욕망은 나의 욕망인가?


5) 지적허영심의 발로는 아닌가? 그건 나쁜 것인가? 등등등.


이처럼 취향에 대한 얘기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면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겠다.


1) 나를 감각적으로 만족시키는 것들.


2) 나를 정신적으로 만족시키는 것들.


3) 둘 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하면서 답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사람이란 나이 들어가면서 마음이 완고해진다지만, 이렇게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바탕으로 취향을 더욱 세련되게 닦고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길 바란다.


(취향 크레바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시간을 내서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와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해보셨을 텐데 그때 여러분들이 느낀 것과 생각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dgk4a6dgk4a6dgk4.png 이 글을 읽고 Gemini가 생성한 이미지

글 목록: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2 : 방향의 의미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3 : 나를 위한 글쓰기

2부 취향 크레바스 - 1 : 쌈띵 온 열 마인드?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2부 취향 크레바스 - 3 : 입맛의 미학 (1)

2부 취향 크레바스 - 4 : 입맛의 미학 (2)

2부 취향 크레바스 - 5 : 입맛의 미학 (3)

2부 취향 크레바스 - ?? : 내 마음이라는 설원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취향 #메타인지 #자기계발 #내면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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