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공감은 받고 싶은 나를 위해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나는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을 쓰지 않았다.
내겐 아주 오래전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해 다른 블로그 플랫폼을 전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글쓰기 자체보다도 내 주변을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년간의 인터넷 생활을 통해 나는 다양한 사람과 접하며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찮게 예전에 내가 쓴 게시글을 접하게 되었다. 십 대의 나는 고작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이십 대의 내가 보기에도 어리숙하고 순진한 데다 관종끼만은 다분한 아슬아슬한 존재로 느껴졌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흔적들을 찾아 지워나갔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명세를 얻었다가도 넷 상의 오래전 글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적어도 유년기의 흔적을 지워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답게 그 흔적들을 지우는 데에 나는 상당한 시간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 조금씩 답답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이 궁금하고, 내 취향을 이해받고 싶은 관종끼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인들과 근황을 나누는 사실상 실명 소셜미디어에선 더더욱 조심해야 하기에 그러한 답답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만 갔다.
그러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소위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나 스스로가 소위 '일관된' 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시간이 바뀌면 내 생각도 자연스레 바뀌기 마련인 데다, 생각이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일관성에 대한 비난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의 의견이 계속 바뀌는 사람의 말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나는 일관성에 대한 내적 모순을 도저히 납득가능한 방법으로 풀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글쓰기에 희한한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내 생각과 정반대인 의견을 지지하는 글을 진지하게 써보는 것이다. 분명히 내 반골기질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이를테면 어떤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나 또한 그 주장에 동의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나는 분명히 그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생각하며 내가 동의하는 주장에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딴지들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내가 지지하는 주장을 더 견고하게 다져나가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저 새끼 뭐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부정적인 결과를 알면서도 그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소위 반성적 "자기 피드백"의 과정을 전면에 굳이 드러내지 않을 최소한도의 지능이 내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작가 이종범의 유튜브 영상들과 인터뷰를 시청한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오타쿠와 덕질에 대한 영상들을 시청하다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특히 자기화해와 인생의 테마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 내 안의 잿더미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깜빡이는 느낌을 받았다. 불씨가 아니라 오랜 기간 잿더미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잉걸불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고, 보이고 싶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그 틀에 맞지 않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터였다. 자기부정이나 자기 긍정 모두 나 자신을 살피고, 이해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했다. 과거나 현재의 내게서 덮어두고 싶어 하는 부분이나 대책 없이 긍정하고 싶어 하는 부분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나는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타인에게 보이기에 스스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덮어두고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은 다면적이고 자기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냉소적 회의만 갖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거대서사와 같은 이정표가 사라지고,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각성이 중요한 앞으로의 시대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포용하고 넘어서는 극기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이교수의 조건 없는 학교의 슬로건을 빌어 말하자면 '포월'의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 다양한 측면들에 내 실명이 호명되는 것이 두렵다. 그렇기에 익명을 빌어 이 자리에서나마 다시 한 걸음 내디뎌본다. 여전히 모자라고 엉망진창이지만, 이 익명의 자기 고백을 통해 자기 화해와 끊임없는 자기 도야의 첫걸음을 떼고자 한다. 이 길에 도달해야 할 목표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 궤적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용기 있는 나 자신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우연찮게 방황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당신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등 떠밀어주거나 자신이 걷는 길을 의심하는 당신의 위안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영상들과 인터뷰:
1. 도피와 방황, 자기화해는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 이종범 작가 1부
2. 나는 무엇의 천재일까? 숨겨진 나의 재능을 찾는 법 | 이종범 작가 2부
글 목록: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포월을 비롯해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기는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면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모바일 가독성에 대해서도 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