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관종의 크레바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제일 처음으로 쓴 글은 왜 지금껏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리지 않다가 다시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에 대해서였다.
글을 쓸 때, 특히 글 내용 자체보다는 쓰는 데에 더 의미가 있는 글인 경우에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다들 동의를 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들을 공개하는 것은 나 스스로 관종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고,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본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티끌만 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서랍에 써두었던 글을 읽어보고 등을 떠밀어준 친구(적어도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에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게 되었지만.
최근에 내 커리어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다양한 지원서류들을 다시 읽어보고, 업데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원 서류들을 새로 작성하게 되었다. 내 일에 대한 관점들이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커버 레터(Cover Letter)나 직무 관련 Statement(이를테면 프로젝트 제안 같은 것 등이 있다)를 적는 것이다.
일종의 지원동기서 같은 서류인데,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지원하는 곳에서 어떻게 잘, 조화롭게 해 나갈 것인지를 적으면 된다. 물론 내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 서류들을 보여주거나 직무에 관한 주변인들의 의견들을 들어보는 등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는 한다. 그런데 주변의 의견들을 듣다 보면 그들의 다양한 관점들 모두 합당한 관점이기에 이리저리 끌려가지 않고 내 중심을 잡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던 와중 한동안 신세를 졌던 교수님과 글쓰기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최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꺼냈다.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그 교수님께선 아무리 자신만을 독자로 내세운 글을 쓴다고 해도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한 이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정말로 글쓰기 자체에 집중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아반성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그냥 일지를 쓰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생각을 해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독자가 하나 둘 생기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찌 되었건 나를 위해 글을 쓰고자 하는 내 욕구와 이런저런 단상을 타인과 나누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관종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차와 커피 취향의 변천으로 내 성향을 파악해 보는 입맛의 미학을 기획할 때는 어떤 소재가 독자들의 관심을 잘 끌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갑자기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진 않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자극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 성향을 삶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는데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참, 인간의 내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숨이 나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역시 지금 쓰고 있는 기획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기획을 잘 마무리해 보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고 있다. 끝까지 써서 밑천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어떤 것들을 쌓아 올릴지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여러분은 브런치 작가가 된 후로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
글 목록: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다시 입맛의 미학 (3)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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