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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의 의미

Through the Looking-Glass

by 방향

익명으로 온전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선 나를 지켜줄 개성적인 외골격 슈트가 필요한 법.



브런치 계정을 만들기로 정하고 새 카카오 계정을 만들면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필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무엇을 할지 정했다면, 함축적이면서도 내 다른 페르소나와 연결되지 않을 그런 필명을 찾아보고자 했다.


문득, 수년 전에 보았던 천문학자들의 작명센스에 관한 글이 떠올랐다.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짓는 전파망원경들의 이름은 대체로 대충 지은 두문자어(Acronym)인데 대표적으로 Thirty Meter Telescope (TMT) 나 Very Large Telescope (VLT) 같은 것들이 있다. 천문학의 작명센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제는 일본 천문학의 작명센스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이웃나라 일본에선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낸 실험장비들에 일본어로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이지만 영어로는 지극히 기능적인 이름을 붙이곤 한다. 이를테면 히마와리 1호는 일본어로는 해바라기를 뜻하지만 영문명으로는 정지기상위성 (Geostationary Meteorological Satellite)의 줄임말인 GMS-1이다. 훨씬 인상 깊었던 예시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앞선 생각들을 바탕으로 나는 내 글에 내 어떤 부분들을 드러내고 싶은지 담백하게 적어보았다. 난 내 본업과 별개로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산만함이지만, 어쨌든 내 취향은 성인이 된 후로는 계속 다양해져 왔다. 금세 질리고 다른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는 부화뇌동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지금까지의 나였다.


소위 제네럴리스트, 폴리매스를 추구해 오던 나로서는 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부화뇌동을 초월한 어떤 지점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다양한 취향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해 글을 쓰기로 한 나의 초심을 계속 상기시켜 줄 필명이길 원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방황하는 취향"이라는 말이었다. 취향이 사람도 아니고 내가 방황을 하면 했지, 왜 취향을 방황시키나? 하는 자조가 따라붙었다. 뭔가 이상한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표현을 내려놓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른 회원가입을 마치고 뭔가를 쓰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방황하는 취향"을 줄인 방향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관종들 사이에는 검색을 했을 때 겹치지 않는 닉네임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오래된 금언이 있다. 그런데 아뿔싸! 방향은 엄청나게 자주 쓰는 보통명사가 아닌가. 나는 필명을 바꿔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한자어의 특성상 다양한 한자의 조합으로 동음이의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의미의 방향조차도 다양한 방향을 향해 관심을 갖는 나 자신의 속성을 어느 정도 표현해 줄 수 있었고, 은은하게 전방위로 향을 퍼뜨리는 방향의 의미도, 그리고 여러분의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의 방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으로 생각이 닿았다.


이러한 특징이 이 브런치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나를 위한 글쓰기의 특징과 맞닿아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그대로 쓰기로 정했다.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닉네임이나 필명을 정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요. 저 또한 끝까지 고민하지 않고 중간에 자포자기하듯이 정해버렸으니까요. 그러나 사후약방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저는 이 글을 쓰면서까지도 이어진 고민 끝에 필명에 제 마음과 제가 앞으로 써나갈 글들의 본질이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무의식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들께선 닉네임이나 필명을 정할 때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저처럼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깨닫거나 해서 여러분들의 무의식의 힘을 느꼈던 적은요? 저는 여러분들의 경험이 너무나 궁금해요.



정지위성(Geostationary Satellite, GOS)은 지구의 자전속도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여 지표에서 봤을 때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지궤도"를 따라 운행되는 인공위성을 의미한다. 뉴턴 역학을 이용해 위성에 작용하는 지구의 (비상대론적) 중력을 구심력으로 하는 등속원운동을 분석하여 지구의 자전속도와 지구와 인공위성의 질량비로부터 지구 중심으로부터 궤도 반지름을 계산해 볼 수도 있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거기에 도전하여 "스스로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삼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폴리매스(Polymath)는 고전 그리스어 '폴리마테스(πολυμαθής)'에서 유래한 말로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제게 폴리매스란 창의적으로 제너럴리스트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승화시킨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원형으로는 역시 "The Renaissance man"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사람들이 있겠지요. 모든 것이 더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더욱더 빛이 납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자신의 뚜렷한 주관 없이 남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동조하거나 휩쓸려 따르는 태도를 의미하는 고사성어입니다. (구글 AI 개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이미 일이 잘못된 뒤에 후회하거나 대책을 세워도 소용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고사성어입니다. (구글 AI 개요)


Gemini_Generated_Image_xb6zwnxb6zwnxb6z.png 이 글을 읽고 Gemini가 생성한 이미지

글 목록: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2 : 방향의 의미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3 : 나를 위한 글쓰기

2부 취향 크레바스 - 1 : 쌈띵 온 열 마인드?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2부 취향 크레바스 - 3 : 입맛의 미학 (1)

2부 취향 크레바스 - 4 : 입맛의 미학 (2)

2부 취향 크레바스 - 5 : 입맛의 미학 (3)

2부 취향 크레바스 - ?? : 내 마음이라는 설원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필명 #자기계발 #자아성찰 #글쓰기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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