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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_싱글맘이 될 결심

협의이혼서류를 제출했다.

by 테토솜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한 모든 시도들은 그때뿐이었다. 도박이 계속될수록 금액도 점점 커졌고 지인들한테 빌리는 돈으로 부족해 회사에서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아 나 몰래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월급을 받는 족족 날렸다..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줬다.


아빠가 충청도에서 거주하고 신 고모와 고모부 회사로 가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건설 쪽 회사였는데 도박을 하는 원인이 돈 때문이라면 모든 걸 리셋시킬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자는 거였다. 차라리 기술을 배워라였다. 원룸 하나 얻고 통장, 일과 관련된 서류도 일절 안되니 통제가 되는 상태에서 돈을 벌면 안 하겠다 싶어서 제안한 것이었다.


X는 시큰둥했다. 이유는 멀리 가기 싫다는 것.

하지만 현재 회사생활을 하는 게 의미가 없었

X는 퇴사 후 충청도로 가게 되었다.


현장 일이라는 게 보통이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고 몸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다.

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싫었으면 도박을 안 하면 되지 않는가? X가 충청도로 가면서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고 나는 혼자 일하며 독박 육아를 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X가 보이지 않으니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었으나 아들 둘을 혼자 케어하는 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시키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돌봄 선생님과 하원한 아이들 챙기고 씻기고 집안일하고 나면 잠자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다. 몸이 힘드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X는 힘들게 돈을 벌어도 본인이 돈을 갖고 있지 못하니 더더욱 불만이 많았다. 퇴사를 괜히 한 거 같다며 후회했다. 일이 고돼서 피곤해하면 인천에서 충청도까지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주기도 했지만 전혀 고마움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는 도박을 멈추지 않았다.

돈을 내가 관리해서 돈이 없으니 핸드폰 소액결제를 100만 원씩 하기 시작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리고 일을 못하겠다고 그만두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가져다주는 생활비도 없이 내가 벌어서 굴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돈도 내가 벌고 육아도 내가 하고 집안일도 내가 하는 지경이 되니 평생 이 사람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아까웠다.

그렇게 이혼을 결심했다.


아빠도 한밤중에 인천 집으로 올라왔다.

도박을 끊을 의지가 있는지 X한테 물어봤다.

대답은 시큰둥했다. 내 탓을 했다. 내가 본인한테 잘 안 해줘서 그랬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파도 신경도 안 썼다며 불만을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아빠도 나도 너무 황당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한마디 했다.


" 탁자에 유리컵이 하나 있는데 그 유리컵을 네가 깼어. 그런데 ㅇㅇ이는 그 깨진 유리컵을 다시 이어 붙이겠다고 피 묻히며 이어 붙였는데 너는 힘겹게 이어 붙인 유리컵을 계속 다시 깨고 있지 않니? "


X는 끝까지 본인은 잘못이 없다. 나 때문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도박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아빠도 심리학 공부를 했던 터라 도박도 병이라 암환자가 항암치료받듯이 도박도 치료를 받아야 되는 거라고 했으나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 너희 그냥 이혼해. 정리해라 이제 "

할 만큼 다 했으니 더 이상 끌고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혼 절차에 대해 알아봤다.

협의 이혼 서류 접수 후, 아이가 있으면 필수로 받아야 하는 부모교육 같은 것이 있다. 이 절차들은 당사자 둘 다 참석해야 협의이혼이 진행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계속 법원에 나타나지 않으면 협의 이혼은 불가능하다. 그럼 소송으로 가야 한다.

서로 휴무를 맞춰서 가정법원에 가서 협의이혼서류를 접수했고 접수 당일 바로 부모교육을 들었다. 부모교육장은 이혼을 하려는 부부들로 가득 찼다. 20대 부부는 우리밖에 없었다. 부모교육은 이혼한 부부들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영상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앞으로 이혼 가정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이 생각났다. 마음이 동요됐다.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경우, 협의이혼서류 접수 이후 3개월의 숙려기간 그리고 1회 부부상담이 필수다. 서류 접수 이후에 다시 법원에서 만나 부부상담을 진행했는데 도박 때문에 이혼한다 하니 상담사분은 언제부터 도박을 했냐고 물었다. X의 대답은 의외였다. 고등학교? 때 정말 재미로 장난 삼아했었다고 했다.

나는 또 충격에 휩싸였다.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아빠가 돼서 현실적인 압박감에 그런가 보다 이해했으나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동요됐던 마음이 싹 사라지면서 이혼을 결심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담사분은 이혼과 별개로 내가 너무 지쳐 보인다고,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추가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추가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다양한 심리 검사들을 진행했고 서로 검사결과에 대해 비교 분석을 했다. X와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생각하는 것도 달랐고 성격도 달랐다.

상담사 분은 내 검사결과에 굉장히 놀라셨다.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분석하는 성향(?) 관련된 수치가 거의 만점에 가까이 나온 것을 보시고 보통 연구원이나 학자들한테 나오는 수치라고 하셨다. 그쪽 일을 하시냐고 물어보셨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X는 그런 나와 정반대라 서로가 엄청 힘들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려의 말씀을 하셨다. 특히 사회에서의 내 모습과 가정에서의 내 모습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하셨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나서 심각한 상태라고 하셨고 이거 이대로 두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이혼절차과정 중에 하나라 생각하고 흘려 들었다.


협의이혼을 진행하면서 아빠랑 아이들의 양육권 문제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통화를 자주 했.

X는 도박 빚으로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되고, X의 부모님들도 애들은 못 키우겠다 하셨다. 리하여 내가 아이 둘을 키우기로 얘기가 됐다. 여태 혼자 독박으로 키웠으니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양육비는 받을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아빠가 한 번은 진지하게

" 그때 걔랑 결혼했으면 같이 미국 유학 가서 너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하고 얼마나 좋아 "라고 했다.


사실 아빠가 얘기한 그분(B)과 헤어지고 X와 갑작스레 결혼을 하게 돼서 더 그랬나 보다. B는 아빠가 출강하던 대학 제자였고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아빠와 아빠의 지인들 모두 B와 결혼하라고 난리법석이었다. 엄마도 살아계실 때 사람 참 괜찮다 결혼하면 좋겠다 했었다. 하지만 나는 청개구리 심보처럼 아빠와 같은 직업이 싫다는 이유로 내가 좋다고 쫓아다니던 그분을 거절했고 한동안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지만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다.


아빠도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움에 한 번도 이 결혼에 대해 나한테 왜 그랬냐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이었다.


그리고 막상 이혼을 하려니 걱정하는 나에게 아빠는 렇게 말했다.

" 아빠가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 아빠가 뒤에서 있으니까 걱정 마. 애들 잘 키울 수 있어."라고 하셨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수화기 너머로 몰래 울었다.


그렇게 2017년 9월

27살의 나는 6살, 4살 아이 둘과 함께 셋이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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