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금배지의 쇼, 국민의 피눈물

제4부. [권력] 높은 곳에 있는 가짜들

by Napolia

15. 금배지의 쇼, 국민의 피눈물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꽃피는 봄보다 더 정확한 주기로, 대한민국에는 '연기의 계절'이 찾아온다. 선거철이다.
​평소에는 창문을 굳게 닫은 검은 세단 뒤에 숨어 있던 양반들이, 갑자기 시장통 한복판에 출몰한다. 빳빳한 양복 위에 기호와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점퍼를 껴입고, 그들은 '서민의 머슴'을 자처한다.
​레퍼토리는 지루할 정도로 똑같다.
평소 호텔 코스 요리만 즐겼을 그 입으로 길거리표 어묵 국물을 밀어 넣는다. 입가에 고추장을 묻혀가며 "아따, 맛 좋습니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그 눈동자는 어묵이 아니라 정확하게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셔터 소리가 멈추면 그들의 미소도 썰물처럼 빠진다. 수행원이 건네는 물티슈로 입가를 닦는 그 손길에는, 묘한 찝찝함과 우월감이 묻어난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세족식(洗足式)'이다.
요양원을 찾아가 쭈글쭈글하고 병든 노인의 발을 씻기는 퍼포먼스. 무릎을 꿇고 발을 닦는 그 모습은 가히 성자(聖者)의 반열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개처럼 터진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후보]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닦고 있는 것은 노인의 발인가, 아니면 자신의 더러운 이미지인가.
그가 흘리는 땀방울은 노동의 대가인가, 아니면 권력을 향한 탐욕의 분비물인가.
​답은 선거가 끝나는 날 명백해진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점퍼는 쓰레기통으로 가고 다시 금배지가 달린 최고급 정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던 머슴은 온데간데없고, 목에 깁스를 한 상전만이 남는다.
​그들이 '낮은 곳'이라 칭했던 시장통은 이제 재개발 이권 다툼의 먹잇감이 되고, 그가 발을 씻겨주었던 노인들은 복지 예산 삭감으로 냉방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
​선거철에 그들이 흘렸던 땀방울은 식염수처럼 증발해 버렸지만,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국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피가 되고 고름이 되어 삶을 짓무르게 한다.
​가짜 머슴이 진짜 주인의 등골을 빼먹는 이 기막힌 하극상.
금배지(金-)는 본래 봉사하라는 명예의 훈장이었으나, 이제는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면죄부'이자 '가짜들의 신분증'으로 전락했다.
​TV 화면 속 여의도 돔 지붕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안에서 흐르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눈물일까, 아니면 다음 공천을 받기 위한 악어의 눈물일까.





​[작가의 한마디]

"연기력으로 뽑았다면, 당신들은 이미 남우주연상감입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