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권력] 높은 곳에 있는 가짜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꽃피는 봄보다 더 정확한 주기로, 대한민국에는 '연기의 계절'이 찾아온다. 선거철이다.
평소에는 창문을 굳게 닫은 검은 세단 뒤에 숨어 있던 양반들이, 갑자기 시장통 한복판에 출몰한다. 빳빳한 양복 위에 기호와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점퍼를 껴입고, 그들은 '서민의 머슴'을 자처한다.
레퍼토리는 지루할 정도로 똑같다.
평소 호텔 코스 요리만 즐겼을 그 입으로 길거리표 어묵 국물을 밀어 넣는다. 입가에 고추장을 묻혀가며 "아따, 맛 좋습니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그 눈동자는 어묵이 아니라 정확하게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셔터 소리가 멈추면 그들의 미소도 썰물처럼 빠진다. 수행원이 건네는 물티슈로 입가를 닦는 그 손길에는, 묘한 찝찝함과 우월감이 묻어난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세족식(洗足式)'이다.
요양원을 찾아가 쭈글쭈글하고 병든 노인의 발을 씻기는 퍼포먼스. 무릎을 꿇고 발을 닦는 그 모습은 가히 성자(聖者)의 반열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개처럼 터진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후보]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닦고 있는 것은 노인의 발인가, 아니면 자신의 더러운 이미지인가.
그가 흘리는 땀방울은 노동의 대가인가, 아니면 권력을 향한 탐욕의 분비물인가.
답은 선거가 끝나는 날 명백해진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점퍼는 쓰레기통으로 가고 다시 금배지가 달린 최고급 정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던 머슴은 온데간데없고, 목에 깁스를 한 상전만이 남는다.
그들이 '낮은 곳'이라 칭했던 시장통은 이제 재개발 이권 다툼의 먹잇감이 되고, 그가 발을 씻겨주었던 노인들은 복지 예산 삭감으로 냉방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
선거철에 그들이 흘렸던 땀방울은 식염수처럼 증발해 버렸지만,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국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피가 되고 고름이 되어 삶을 짓무르게 한다.
가짜 머슴이 진짜 주인의 등골을 빼먹는 이 기막힌 하극상.
금배지(金-)는 본래 봉사하라는 명예의 훈장이었으나, 이제는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면죄부'이자 '가짜들의 신분증'으로 전락했다.
TV 화면 속 여의도 돔 지붕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안에서 흐르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눈물일까, 아니면 다음 공천을 받기 위한 악어의 눈물일까.
"연기력으로 뽑았다면, 당신들은 이미 남우주연상감입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