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나에게 출근한다.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밖에서, 잠시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by 멈춤의 일기장

나는 가끔 나에게 출근한다

주부인데 출근합니다.

아무도 월급을 주지는 않지만요.


고속도로를 달려갑니다. 차 안은 조용합니다. 나를 위해 틀어 둔 노래는 몸과 마음을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 주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한 곳으로 모아 볼 시간을 내어 줍니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나뭇가지 끝에 서늘하기까지 한 푸르름이 스쳐 갑니다. 산자락을 점령한 하얀 자작나무도 눈에 들어옵니다.


가족이 모여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던 시간을 뒤로하고, 오늘은 나에게 돌아가 글 쓰는 일에 몰두해 보려고 큰아이 일터를 따라 나와 카페로 출근을 했습니다. 사람을 보고 풍경을 보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천천히 담아 봅니다. 분명 봄인데 사람들은 “아직은 겨울인데?” 하고 말하고, 작아서 잘 보이지 않던 풀들은 어느새 초록초록 저를 뽐냅니다. 나무에게 물어보았더니 벌써 눈을 떴다고, 봄이 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의 구름은 또다시 시샘을 하나 봅니다.


물론 집안 식구들이 모두 출근하고 나면 집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살림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요. 막상 앉으려고 하면 할 일이 하나씩 떠오르는 일 말입니다. 빨랫감이 보이고, 싱크대가 눈에 들어오고, 미뤄 둔 정리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앉았다 일어났다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버립니다.


집에서는 늘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물론 그 이름들이 싫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역할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정작 ‘나’는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 연기를 다시 모으자면 쓸 에너지는 이미 다 빠져나간 뒤인 날도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밖으로 나옵니다.

흩어져 버린 연기를 다시 모으러, 나를 다시 찾으러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 자신이 커피 향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 까만 곳에서 피어오르는 향기 속에 잠시만 앉아 있어도 저절로 글이 써질 것만 같습니다.


찻잔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으면 그곳은 잠시 오로지 내 세상이 됩니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고, 누구도 내 손을 빌리지 않습니다. 나는 커피 향에 귀를 기울이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카페 안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에도 가만히 귀를 대어 봅니다.


음악이 흐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 홀로 앉아 공부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들. 세상의 자유가 이 공간에 잠시 모여 있는 것 같고, 그 자유 속에 나도 조용히 한 자리를 얻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거창한 출근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출근 도장을 찍어 주는 것도 아니고, 성과를 따져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일뿐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있어야,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 자리의 일들을 감당할 힘을 얻습니다.


어쩌면 주부에게도 출근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출근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기 위한 출근. 엄마이기 전에, 아내이기 전에, 한 사람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출근 말입니다.


오늘도 나는 고속도로를 달려 카페에 앉았습니다.

아무도 월급을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분명히 출근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출근이 가끔은, 하루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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