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봄은 내게 잘 살아왔다는 위로와 다시 나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딸아이가 시간이 된다며,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함께 다녀오자고 말을 건넸습니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지금 내 마음을 가장 평화롭게 해 줄 곳이 어디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매서운 바람 속에서 제 코끝을 훔쳐 달아났던 매화 향기가 잊히지 않아 우리는 다시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날씨도 이 작고 소중한 여행을 알아챈 것처럼 따사롭고 맑았습니다.
이곳의 매화는 아직 피어나는 중이었습니다.
몽글몽글한 꽃망울들이 가지마다 매달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 마음에도 한 편의 시가 조용히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매화보다 벌들이었습니다.
꽃에 날아든 벌들이 귓가를 왕왕 맴돌자 딸은 무섭다며 연신 머리를 털고 피했지만, 저는 그 작은 몸들이 왜 그리 예쁘게만 보이던지요.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도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벌들은 제 할 일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꽃 사이를 오가며 배 속 가득 꿀을 담고, 다시 어디론가 바삐 날아가는 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한때는 저 벌처럼 살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 마음을 다 쏟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후회라기보다, 이제는 조금 아득한 전설처럼 느껴집니다.
분명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무겁고 또렷했는데, 오늘의 봄꽃 향기 속에서는 그 시간들조차 멀리 흘러가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른한 봄이 되니 모든 것이 옛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만큼 살아왔다는 건, 어쩌면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버티며 지나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매화도 오늘의 벌도 이토록 다르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아직도 앞으로 가야 할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의 벌처럼, 내 몫의 하루를 다시 한 걸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