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배움 서사> 시리즈 4 (1)
49살.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기엔 좀 늦은 나이였지만, 가슴 한구석에 오래 묻어둔 불씨 하나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손이 점점 덜 가고, 집이 오랜만에 고요해지던 어느 날.
그 조용함 속에서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다시 공부하고 싶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돼 현실은 문을 두드렸다.
토론토 다운타운, 조지 브라운 칼리지 입학처 앞.
유리문 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서성였다.
손바닥은 축축하고, 심장은 이유 없이 쿵쿵 뛰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나,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40대 후반 이민자 엄마가 20대 초반 아이들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
모든 게 무겁고 두려웠다.
그래도 결국 문을 밀고 들어갔다.
상담사 선생님은 천천히, 또박또박, 정말 따뜻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 친절함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속으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지도 몰라.”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캐나다 칼리지에 다녀보고 싶어.”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엄마, 여기 캐나다잖아요. 영어로 다 해야 되는데… 혹시 영어 못한다고 놀리면 어떡해?”
그 말이 가슴 한복판을 쿡 찔렀다.
숨이 턱 막혔지만, 오래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
이번엔 내 안에서 더 단단한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래도 이번엔… 나를 위해서 해보고 싶어.”
입학 허가서가 왔고, ESL 테스트도 생각보다 잘 봐서 한 달 만에 레벨을 다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Community Worker 정규 과정 첫날.
강의실은 20대 초반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말없이 맨 뒷줄 구석에 앉아 숨만 골랐다.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집에 오는 길, 크게 심호흡을 하며 혼잣말을 했다.
“남들이 두 시간 공부하면, 나는 다섯 시간 하면 되지.”
그 말이 그때부터 나를 버티게 해준 주문이 되었다.
그날부터 가족이 잠든 밤, 나만 조용히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모르는 단어는 작은 노트에 빼곡히 적었다.
손이 굳으면 펜을 내려놓고, 잠시 손을 비비고, 다시 펜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끝이 뜨거웠다.
나이 든 공부는 체력 싸움이 아니라 마음 싸움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알았다.
어떤 날은 수업이 도저히 머리에 안 들어와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죄송한데… 오늘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교수님은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요. 다시 설명해줄게요.”
작은 연구실에서 나만을 위해 한 시간이 넘게 수업이 이어졌다.
끝으로 건넨 한마디.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감사함, 미안함, 벅참… 이름 모를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젊은 친구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진짜 그 말대로 했다.
점심 사주고, 커피 사주고.
그러자 아이들이 먼저 다가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Hey Mom! 같이 밥 먹을래?”
그 한마디에 낯설던 교실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아, 나도 여기서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구나.
지난 겨울,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있는데 밖에는 눈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그 고요한 순간,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아직 늦지 않았구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속도는 남들보다 느릴지 몰라도, 방향만 맞다면
배움의 길은 언젠가 나를 더 단단한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걸
이제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조용히, 그러나 절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분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지도 모르는 일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계신가요?
저도 그 문 앞에서 오래 서성였습니다.
손에 땀이 나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죠.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다음 길은 정말로 열렸습니다.
한 걸음만 내딛어 보세요. 그 다음은 저절로 열립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