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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인간의 그림자와 마주 서기

by Henry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모험과 환상 그리고 인간의 어두움을

동시에 붙잡는 작가였다.


그는 사람을 두 가지 색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 안에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조용히 충돌하는 순간을 들여다보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충돌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이야기다.


지킬 박사는 세상에 인정받는 인물이었고

품위 있고 신중한 삶을 살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제나 다른 목소리가 자라고 있었다.


지켜야 할 규범,

규범 아래 눌린 욕망,

그리고 욕망이 만들어내는

작은 흔들림 들이다.


지킬은 결국 실험을 통해

목소리를 실제 모습으로 분리해 낸다.

그것이 하이드다.

하이드의 행동은 잔혹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그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킬의 억눌린 욕망이

형체를 얻은 얼굴이었다.


스티븐슨은 그 사실을

독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나 자신을 잃는가?”

“내 안의 어둠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분리하면

자유로워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인간의 그림자는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자를 버리려는 순간

그림자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하이드는 점점 더 강해진다.

지킬이 외면하면 할수록

그는 더 대담해지고

결국 지킬의 삶 전체를 집어삼킨다.


이런 비극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다룬 깊은 은유다.

감추려 할수록

무언가는 더 어두워지고

두려워할수록

두려움은 우리를 지배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말하는 핵심은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둘이 한 사람 안에서

균형을 잃을 때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조용한 그림자가 있다.

부끄러움, 분노, 욕망, 피로, 결핍 등이다.


하루 중 어느 순간

그림자는 내 안의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을 무작정 닫아두는 것은

지킬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두운 곳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른다.


스티븐슨은 말하고 싶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가장 위험한 길이 된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지킬의 비극은

어둠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어둠과 대화할 용기를

끝내 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그림자에 휘둘리지 않는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은 채

완전하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전하고 싶은

가장 조용한 진실이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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