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선택이 남긴 한 줄기 질문
최인훈이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늘 이성의 빛과 질문의 칼을 동시에 들고 서 있는 작가다. 그는 분단의 비극을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인간 존재의 구조와 선택의 기원을 탐문하며 우리가 당연히 여긴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다시 묻는다.
그의 문장은 사실적이면서도 현미경처럼 깊고 차갑지만, 그런 차가움으로 세상을 더 정확히 바라보게 만든다. <광장>은 그런 그의 문학적 집념이 한 지점으로 응축된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두 체제 사이에서 자신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이다. 그는 남한에서의 무기력한 자유에도, 북한에서의 과도한 통제에도 온전히 안착하지 못한다.
그가 바라본 세계는 어느 편도 완전하지 않고, 어느 광장도 진짜 열려 있지 않다. 그가 타고난 사유의 예민함은 그를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그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존재론적 배제라는 벼랑으로 내몰린다.
명준에게 남과 북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살아도 되는 세계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두 개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의 사랑 역시 온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가 만난 은혜는 개인적 구원이 될 수 있었지만, 분단의 현실은 사적 관계마저 서늘하게 갈라놓는다. 사랑 앞에서도 그는 망설이고 결국 은혜를 떠나보낸 뒤에야 자신이 놓친 온기의 크기를 깨닫는다.
이 소설의 비극은 체제가 만든 폭력만이 아니라 체제의 균열 속에서 한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미끄러지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다.
결국 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제3 국행을 택하고 다시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그에게 탈출이자 귀환이고 생의 마지막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그는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광장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그의 마지막 행위가 무엇이었든 작가는 결말을 비극으로 봉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남겨진 독자로서 선택의 여백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인간이 어떤 체제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면 우리의 광장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명준의 침묵보다 더 크게 울린다.
<광장>을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한다면 ‘자기 존재의 자리 찾기’다. 이것은 정치적 선택 이전의 문제이며 인간이 언제나 품고 살아가는 근원적 질문이다.
명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정말로 자유로운가. 혹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누군가가 대신 정해준 광장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고독한 궤적은 시대의 비극을 넘어 우리 각자가 자기 자리를 어떻게 견디고 빚어가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소설은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인간학의 깊은 우물에 가깝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파헤치는 문학. 시대가 달라져도 계속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광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오늘 서 있는 자리, 그것은 당신이 선택한 곳인가, 아니면 떠밀려 선 곳인가. 문학은 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 돌아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용한 그러나 진짜 자기만의 광장을 찾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