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정윤이 2

고2 여름, 사랑이 시작되다

by 토박이

딱. .

- 고로췌~!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하하.

- 아, 그게 안 들어가네.

- 점심 내기다. 얼른 공 뿌려!

학교 앞 당구장은 공강 시간을 노린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나는 지금 우리 반 애들이 주로 다니는 아지트에서 당구를 치는 중이다.



.

“아, 또 빗나가네.”

“영기야, 그냥 지지 쳐.”

오늘따라 쉬운 공도 다 놓치고 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큐대를 천천히 당겼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반 친구들마저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삑—

젠장.

또 삑사리가 났다.

“야, 영기 오늘 왜 저러냐...”



이게 다 저 여자애 때문이다.

“홍영기, 아직 멀었어? 나 심심해.”

당구대에 엎드려 있던 그 애는 턱을 괴고 지루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초록 천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가늘고 하얀 손가락은 당구대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빨리 좀 끝내라는 신호였다.

“야, 넌 너희 반 애들이랑 안 놀아?”

그 애가 지루한 듯 상체를 일으켰다.

“재미없어. 별로 친하지도 않고.”

친구들의 시선이 다시 나를 찔렀다.

이번엔 조금 더 노골적이었다.

‘야, 쟤 누구냐?’

‘영기가 여자애랑 왜 같이 있어?’

눈동자들이 시끄럽게 굴러갔다.

결국 도저히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지지를 선언했다.

그 애가 웃으며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큐대를 내 손에서 낚아채듯 빼앗았다.

“나가자, 영기야. 뭐 먹을래? 내가 살게.”

그 애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도날드덕 빅맥 콜? 어때 정윤?”



“어우... 야, 그렇게 먹으면 맛있냐?”

정윤이는 힘껏 햄버거를 눌러 호떡처럼 만들었다.

그리곤 그 안에 케첩을 뿌린 감튀를 듬뿍 집어넣었다.

“응, 맛있어. 집어먹기 귀찮기도 하구.”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감튀가 삐져나온 햄버거를 한 입 깨물면서도 태연하게.

빨간 케첩이 입가에 묻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 이게 정윤이지.

여느 여자애에게서 볼 수 없는 새로움, 낯설음이 좋았다.

햄버거를 호떡처럼 눌러 먹는 것도, 케첩이 묻은 손가락을 그냥 입으로 쪽 빨아 먹는 것도, 창밖 풍경을 보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그 매력이 지난 1년 반 동안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랬었다.



미안 영기야... 나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어, 언제부터? 그런 얘기 없었잖아. 그럼 나 여기 왜 오라고 한거야?

...미안해, 영기야



지난 겨울, 나는 정윤이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정윤이는 본래 제주도 사람이 아니다.

서울이 고향인 정윤은 직업 군인인 아버지 때문에 전국을 계속 돌아다녀야 했고, 중학생 때 제주도로 오게 됐다.

인천에서 3년, 부산에서 2년, 대구에서 1년.

정윤이에게 고향이란 개념은 희미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에 떠났으니, 기억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 정윤이와 목포 촌놈인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됐냐고?

훗, 이게 또 기가막힌 사연이 있다.



고등학생때였다.

아버지의 보증으로 집이 사라졌다.

우리는 다 쓰러져가는, 정말 붕괴 직전의 낡은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고 내 방은 당연히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반강제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 중에 목포에서 제일 큰 사진관 아들이 있었다.

기성이라는 애였다.

부자 아버지를 둔 그 애는 보이스카웃 활동으로 외국에서 열리는 여름 캠프에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기숙사 애들에게 자랑했다.

제주도 걸스카웃 여학생을 사귀게 됐다고.

“야, 진짜 이쁘지? 사진 좀 봐봐야.”

기성이는 우리 앞에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이밀며 들뜬 얼굴로 웃었다.

“야, 나도 갸 친구 하나 소개시켜줘.”

배가 아팠던 나는 무심한 척 툭 내뱉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사실 기대도 안 했다.

기성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케이, 한 번 물어볼게.”



며칠 후, 기성이가 말했다.

“야, 영기야. 여자친구 반 애 중에 펜팔 하고 싶다는 애 하나 있다는디. 해주까?”

“...진짜?”

생각지도 못했고, 잊고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근디... 이쁘다디? 사진있냐?”
“지랄 염병하네. 꺼져, 안 할 거면 말어.”

“아, 아니여. 장난이여. 진짜 할게. 근디 갸 이름이 뭐라디?”

“응, 정윤이라드라. 김정윤.”

“김정윤이...”

그렇게 시작됐다.

고2 여름에 우연히 찾아 온.

나의 첫사랑이...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