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아침을 : 모닝구를 찾아서
처음 <교토에서 아침을> 시리즈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아침식사하기 좋은 스폿들을 하나씩 소개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 규칙을 정했다.
1. 집으로부터 반경 9km 이내일 것
2. 별도의 아침 메뉴 즉, 모닝구(モーニング)가 있을 것
좋아하는 가게들을 적어보며 금세 예외를 두어야 하는 때가 오고야 말았는데, 바로 마루키 제빵소 때문이었다. 아침세트는커녕,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실내공간도 전혀 없으니 규칙으로만 치면 낙제점이지만, 그 어느 가게보다 일찍, 그러니까 새벽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른 아침 6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곳이니 충분히 아침식사를 위한 가게로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규칙은 정말로 깨뜨려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한참 자전거 페달을 굴러 집에서 6km쯤 떨어진 빵가게로 향했다. 아침 공기가 가시고, 한참 햇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 꽤 길을 헤매었다. 걸어서 출발했다면 벌써 포기하고 아무 카페에나 들어앉아 시원한 커피를 들이켜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오전 11시.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 조급한 마음으로 골목을 누비며 드디어 낡고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まるき製パン所(마루키 제빵소)'
일본에 도착하고 한동안은 '빵'이라는 말이 한국과 비슷한 발음이라 (정확하게는 빵과 팡 정도) '빵'이라고 쓰인 간판들을 보며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났다. 한자와 한자사이에 히라가나로 パン(팡)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다는 소문에 혹시나 매진이 되어 문을 닫았을까 싶어 긴장했는데, 가까이 가니 나무로 된 선반에 넉넉히 준비된 빵들을 보니 안심이 됐다.
* '빵'은 포르투갈에서 온 단어라 한자가 없다
마루키제빵소의 주력메뉴는 콧페빵이다. 코페빵은 소시지가 든 미국식 핫도그빵과 모양이 거의 같다. 식감은 한국의 모닝빵과 비슷하고 모양은 길쭉하게 생겼는데, 일본에서는 콧페빵을 반으로 가르고 그 안에 다양한 속재료를 채워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는데 보통 롤(ロール)이라고 부른다.
이 콧페빵을 다시 구분하면 반찬빵이 되는데, 일본사람들의 말로 치면 소자이빵(惣菜パン)이다. 소자이는 반찬이라는 뜻이다. 카레빵, 소시지빵, 크로켓처럼 말 그대로 반찬재료를 넣어 만들거나 식사대용이 되는 든든한 빵을 말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양한 속재료를 넣은 콧페빵, 그러니까 바로 이 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롤 중에서도 가장 일본스러운 것을 고르자면 속재료로 야끼소바를 채워 넣은 야끼소바롤 아닐까. 수년 전 처음 편의점에서 야끼소바롤을 목격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빵에 국수를 넣어먹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 기억이 강렬해 사실 아직도 먹어보지 못했다. 야끼소바빵은 1950년대에 도쿄 어느 빵가게에서 시작되었다. 야끼소바와 빵을 같이 팔던 가게를 찾은 손님이 그냥 빵 안에 넣어달라 요청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일본인의 소울푸드인 야끼소바를 젓가락 없이 먹을 수 있어 즐길 수 있어 지금은 전국의 일본인이 즐겨 먹는 소자이빵이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보고 싶지만, 오늘은 절대 아니다. 유난히 먹을 것 앞에서는 모험심게이지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내가 메뉴판을 구경하는 사이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가게에 들러 재빨리 빵을 사갔다. 애매모호한 시간 덕분인지 줄을 서지는 않았지만, 역시 인기 있는 빵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인은 밥심' 같은 말들이 유행인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쌀밥대신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면 '끼니를 때운다'같은 말들로 식사로서 빵의 위상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빵을 사 먹는다'는 모습이 여전히 그리 익숙하지가 않은데, 일본에서는 백발의 어르신들이 빵과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아니 거의 매일 보게 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1950-60년대의 일본학교에서는 쌀밥대신 콧페빵이 급식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그때 학창 시절을 보낸 어른들의 향수 때문에 특히 콧페빵이 인기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진열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롤은 물론이고, 크로와상, 카레빵처럼 다른 종류의 빵도 가득했는데, 또 오면 될 것을 이리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는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게다가 사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마루키제빵소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점찍어 두었던 에 비프리카츠롤(으깬 새우튀김을 넣은 롤)이다. 기왕 왔으니 하다 더 사서 집에 가져갈 요량으로 두 개를 주문했다.
동전주머니를 살폈더니 만 엔짜리 한 장과 10엔짜리만 가득이다. 3천 원짜리 빵 두 개를 사면서 10만 원을 내려는 셈이라 왠지 무안해져 괜찮냐고 물으니, 계산을 담당하는 점원은 친철함 가득 담은 표정으로 흔쾌히 상관없다고 답해주었다. 점원의 친절에 어쩐지 가게 앞에 두툼한 방석을 깔아 둔 대기좌석까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온라인에서는 교토사람들의 비꼬는 말투가 종종 회자되는 중이지만 이런 치밀한 환대 속에서는 번뜩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
작은 매장 안쪽 공간에서는 계속해서 분주하게 빵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문대로라면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고, 늦은 저녁 문을 닫을 때까지 꾸준히 사람들이 오간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은 물론이고 한국사람들에게도 종종 소개되기도 하고,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번화하지 않은 동네에 숨은 작은 빵가게가 1947년에 개업해 지금까지 인기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튀김이 들어있으니 따끈한 빵이 아무래도 더 맛있긴 하겠지..?'
갓 만든 빵을 산 것도 아니고, 당연히 벌써 식어버린지는 오래라 아쉽다고 생각하며 포장해 온 빵을 꺼내 들었다. 한입 베어 물자 묵직하게 들어찬 새우살과 촉촉하고 쫄깃한 빵이 조화롭다. 누군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일이 쉬운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고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저 새우살을 으깨 튀겨만든 새우카츠와 타르타르소스, 그리고 레몬 한 조각이 전부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새우카츠롤에서 고수의 향기기 폴폴 난다.
<마루키제빵소>
위치 : 교토 오미야역 인근 도보 10분
영업시간 : 오전 6시 30분 ~ 오후 8시 (월요일 휴무, 공휴일은 오후 2시까지)
대표메뉴 : 콧페빵
가격 : 200~300엔 (현금결제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