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거리감이 필요하다

원과 원이 만나는 지점에서

by soso han mauem


사랑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내가 살아가는 관계들을 떠올린다.


만약 각자의 삶이 하나의 둥근 원이라면


가장 작은 원은 ‘나’이고,

그 바깥으로 가족, 부모님, 형제자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 동그란 울타리들은

겹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살짝 떨어져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흘러간다


그 모습이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행성들이 고요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풍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문득 생각한다.

이 모든 원을 하나로 완전히 합칠 수는 없을까.


경계가 사라지고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그런 완벽한 합일을 꿈꿔본 적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모든 것이 한 원 안에

들어올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상대의 전부가 되고 싶었고,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그 바람은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각자의 원에는

그 사람만의 색과 무늬,

지나온 시간과 지켜온 비밀,

움직이는 속도와 리듬이 담겨 있다.


그 고유한 공간까지 하나로 합치려 하면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를 잃고,

상대에게도 알 수 없는 무게를 지우게 된다.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내어주려 했던 시절보다

‘나’를 잃지 않는 균형을 배웠을 때,

비로소 더 넓고

건강한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모든 원을 하나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서 걸음을 맞추려 한다.


그 일이야말로

신뢰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원과 원이 만나 빚어내는 ‘교차점’이다.


그곳에서 사랑과 위로가 건네지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스며들며 마음이 이어진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로서,

배우자로서

이 교차점에서 진심을 주고받으며 다시 자라난다.


이 작은 지점을 단단히 지켜낼 수 있다면

삶은 잘 깎인 조약돌처럼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흐르더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부드러운 여정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온전히 ‘나’이면서도

사랑하는 이들과 깊이 연결된 사람으로

조용히, 또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그 균형이야말로

내 삶을

오롯이 빛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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