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을 한 죄? 사랑하지 않은 죄?

성경독후감 14. 도대체 왜 우리가 죄인이라는 얘긴가?

by 김은식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

우리는 보통 죄를 어떤 행동으로 이해한다. 금기를 어긴 것,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남에게 해를 끼친 것.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집단적인 고백 앞에서 속으로 되묻곤 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야 있겠는가만, 그 죄들이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한 불지옥에 던져질’ 만큼이라고 한다면 좀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지은 죄들 중에 어느 것이 그 정도로 끔찍한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심하게 망가뜨렸는가.


하지만 예수의 말씀은 질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율법교사가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덧붙인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영생은 비밀스러운 지식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사랑을 행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어지는 비유는 더 직접적이다. 강도 만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 하나님을 앞장서서 모시고 또 그의 길을 가르친다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를 보고 지나간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않았다. 단지 무관심했을 뿐이다.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로 인해 새삼 망쳐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예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


이 질문은 묘하다. '누가 그의 이웃이냐'고 묻지 않고, '누가 그의 이웃이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로 서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관계라는 뜻이다.


친구를 얻는 방법은 친구가 되는 것뿐이라는 말이 있다. 관계는 함께 만들어간다. 하지만 내가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내가 차가워지면 내가 속한 관계도 차가워진다. 내가 따뜻해지면 관계도 조금은 따뜻해진다. 물론 내가 온기를 뿜어도 곧 차갑게 식어버리게 만드는 냉정한 관계도 있고, 내가 한기를 내뿜어도 곧 따뜻하게 품는 관계도 있다.


물론 우리의 관계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가족, 친구, 동료, 또 이런저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여러 겹의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따뜻한 사람 곁에 따뜻한 사람들이 모이고, 차가운 사람 주위로 차가운 사람들이 모인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란 결국 그의 선택들이 쌓인 결과이며, 인복(人福)이란 결국 복스런 삶의 메아리다.


예수는 선한 이웃이 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선한 이웃이 되어주는 일은 내가 또한 선한 이웃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한 이웃을 얻고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내가 살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악하게 행동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면 고립되고 악에 포위되는 것은 나다. 예수의 말씀을 이렇게 읽으면, 그것은 도덕적 강요로 들리지 않는다. "손해 보며 살아라"는 요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그 삶의 법칙을 일깨우는 말처럼 들린다.


교통신호를 생각해보자. 빨간불에 멈추는 것은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그 질서를 지킬 때, 우리는 더 안전하고 더 빠르게 이동한다. 겉으로는 이타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께 사는 구조를 이해한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사랑도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삶은 안전해 보일 뿐,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길이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죄를 '저지르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더 근본적인 죄는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순간에 이웃이 되지 않은 것, 사랑해야 할 자리에서 사랑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함께 살도록 지어진 존재로서의 자기 부정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영웅이 되라고 하지 않으신다. 다만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쌓일 때, 우리는 마침내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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