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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 엄마 Aug 26. 2024

잔소리는 아이를 작아지게 한다.

그림책 "엄마는 모를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수록 진땀이 난다.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것 처럼 콕콕 찔린다. 왠지 책 읽어주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림책 "엄마는 모를걸?의 첫 장면은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에게 떨어지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방을 그렇게 던지면 어떡해! 방에다가 잘 걸어 놔야지. 가방에서 물통 꺼내서 식탁위에 올려놓고~신발도 예쁘게 정리해야지! 양말은 아무 데나 벗어 놓지 말고, 빨래 통에 넣야지! 집에 오면 또 뭐 해야 하지?"


소름이 돋는다. 내가 어린이집 하원 한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와 싱크로율 90프로 이상이다. 이 그림책의 작가에 대해 아는바는 없지만, 아마 이 또래의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분일것 같다. 


"집에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손씻기 전에 눈만지지 말고, 코도 파면 안돼~

뛰지 말고 살금살금 걸어야지! 아래층 아저씨한테 또 혼난다!

장난감도 하나도 안치웠네. 정리안하면 버린다~?! 엄마 말 안듣는다고 토끼반 선생님께 일러야겠다!


어쩜 작가님이 우리집에 왔다 가셨는지 레파토리가 똑같다. 책장을 넘기며 나만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게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왠지 이런 잔소리를 귀에 닳도록 들었을 아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게 된다. 


다음 장을 넘기면 갑자기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가 개미 크기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작아진 아이는 옷도 아무데나 벗어 던져놓고, 밥먹기 전에 과자를 잔뜩 먹으며, 핫케이크 가루로 냅다 가루 놀이를 하고, 엄마 화장품으로 몰래 화장도 한다. 씨리얼이 가득 담긴 우유에서 수영도 하고, 엄마 정수리 위로 올라가 흰머리도 잡아 당긴다. 잔뜩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던 아이는 같이 사는 강아지의 추격을 받아 도망치다가 갑자기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원래대로 돌아오는 마법의 키는 "엄마가 자주 만들어주던 간식에서 풍기는 내음"이다. 간식 냄새를 맡던 아이는 곧 원래 크기대로 되돌아온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다른 그림책이 생각났는데 바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 그림책 속 주인공은 엄마에게 혼이 나고 나서 엄마를 잡아 먹을거야 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괴물들이 사는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때 자기 방에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저녁식사가 있었다. 두 그림책 다 아이들이 "기존의 세계"로 돌아오는 연결 고리가 "엄마가 만든 음식"이다. 그만큼 음식은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 이외의 정서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는 외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외할머니도 딸-주인공 아이의 엄마-에게 갑자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너는 청소를 하는거니? 마는 거니? 냉장고 청소는 언제 했니?..." 잔소리 내용만 바뀌었을 뿐 잔소리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자 잔소리를 들은 엄마가 "작아진다."


작아졌다가 돌아왔다가 작아지는 긴장감 있는 구조와, 대를 이어 이어지는 사건의 발생, 엄마의 음식과 정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져 신선하면서도 친숙함이 느껴지는 그림책이었다.


이 책을 읽어주고 나서 아이에게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때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잔소리 보다는 엄마가 화나서 소리지를때 깜짝 놀라고 무섭다는 말을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네가 엄마 말을 잘 안들으니까, 네가 고집을 부리며 엄마를 시험하니까"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을수는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소리를 지르는건 잘못된 행동인게 맞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폭발한 날은 후에 꼭 사과를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남은 감정과 상처들은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잔소리도 듣기 좋아야 한두번이지 계속 되면 아이에게 좋을 리가 없다. 잔소리를 듣고 행동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또 아이는 주인공처럼 가루놀이도 맘껏 하고 싶고, 우유 속에서 헤엄도 쳐보고 싶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으로 해볼 수 없는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계.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것 같다.


최근 만 5세 생일을 지난 아이는, 몸과 마음은 예전보다 급격히 성장한 것 같은데 기본생활습관과 자조 영역에서 좀더 성장이 필요한 시점인것 같다. 그래서 물통 꺼내기, 수저 갖다놓기, 다먹은 그릇 싱크대에 올려놓기, 어린이집 준비물 가방에 넣기, 신발 찍찍이 떼서 신기 등 여러가지 생활 습관들을 스스로 하게끔 예전보다 더 훈육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의 것들은 이전에도 스스로 하던 거지만, 요즘은 자꾸 짜증을 부리거나 안하려고 할때도 있다. 시간이 촉박할때 본인이 안하고 버티면 엄마가 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러는것 같다.


스스로 해야할 것을 대신 해주고, 스스로 겪어야 할 실패를 막아주는 것들이 장기적으로는 아이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라는 죄책감, 피로와 시간에 쫒기는 상황속에서 아이의 고집을 기다려주고 인내하며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훈육을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 그래서 때로는 대신 해준다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입학을 1년 반 앞둔 시점에서, 이제는 힘이 들더라도 스스로 할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스스로 하지 않았을때의 결과와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해주어야겠다. 


 당장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해야한다. 사물함 정리, 책상 정리, 교과서 준비, 가정통신문 전달, 줄서기, 화장실 뒷처리, 친구 사귀기, 방과후 학교나 학원 시간 맞춰 가기 등등...곧 다가올 입학을 위해서라도 아이의 고집에 대해 지혜롭게 반응하고 기본생활습관을 길러가야 할 때인것 같다.


그래도 이런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평소의 잔소리와 훈육-이라고 쓰고 벌이라고 읽는-방식에 대해 반성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도 주인공을 통해 감정이입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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