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 엄마 Aug 26. 2024

육아 일탈의 미학

그림책 "그래 이닦지 말자"


아이는 아직 5살이라 양치질이 정확하지 않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 스스로 양치질을 하지만 자기전에는 엄마인 내가 꼭 양치질을 해준다. 앞니 양치질을 할때는 괜찮은데 문제는 안쪽 치아. 칫솔이 안쪽 치아에 닿자마자 헛구역질을 하거나 찡찡대기 시작한다. 하필 자기전 마지막 시간은 엄마의 스트레스 역치가 가장 높은 시간. 양치 시간마다 찡찡대는 울음에 나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양치 제대로 안하면 이빨 썩어서 나중에 빼면 아파"


아직 치과에서 이를 빼본 경험이 없는 녀석은 이런 식의 협박이 전혀 와닿지 않나보다. 아이가 얼굴을 계속 틀어대며 움직이는 통에 칫솔이 입 안쪽으로 여기저기를 찔러대니 헛구역질은 더 심해진다. 매일 양치질 전쟁이 따로 없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빌린 책. 제목부터 너무나 신박하다. "그래! 이닦지 말자"라니. 아이들이 너무나 열광할 만한 제목이다. 나도 어느 날은 "그래! 이가 썪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이 닦지 말고 그냥 자!"라고 외쳐보고 싶을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책 내용은 더 재미있다. 처음에 아이가 양치를 거부하자 겨드랑이를 닦아줄까? 라고 한다. 곧이어 짓궂은 장난은 눈, 귀, 엉덩이, 발가락, 콧구멍으로 옮겨간다. 실컷 웃고 난 아이는 마지막에 환한 웃음으로 이 닦아달라고 한다. 결국 즐거운 양치질로 마무리된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실제로 손을 칫솔삼아 눈, 귀, 엉덩이, 발가락, 콧구멍 간지럽히기를 했다. 눈 양치, 귀 양치, 엉덩이 양치, 발가락 양치, 콧구멍  양치질을 한 셈이다. 아이는 엄마 손이 몸에 닿을때마다 자지러지듯 웃는다.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어떤 신체부위가 나오는지 기대하는 표정으로 장면에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책에 별 흥미도 없고, 도서관에 가면 교육용 태블릿만 만지작 거리는 아이가 이렇게 초집중하며 깔깔깔 웃으며 본 그림책은 오랜만이다. 가장 압권은 책 속 보호자가(보호자의 손만 나오기 때문에 엄마 손인지 아빠손인지 모른다) 엉덩이와 콧구멍을 닦아주겠다고 하는 장면이었다. 나도 손으로 아이 엉덩이와 콧구멍을 간지럽혔다. 손이 닿자마자 어찌나 간지럼을 타며 깔깔 웃던지 나도 너무나 즐거웠다.


이 책을 읽고 아이와 화장실로 가서 저녁 양치를 했다. 왠일인지 그날 만은 별로 찡찡대지 않고 순순히 양치질에 협조를 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꼭 해야만 하는 여러 의무들로 너무나 힘겨울 때가 있다. 양치질을 안시키면 이가 썪을것 같아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겨우 겨우 양치를 시키는 나날들. 


"그래! 이 닦지 말자" 


나도 하루 쯤은, 이렇게 외쳐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