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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Nov 07. 2024

밤의 한가운데

아직도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많은 것들이 질서정연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은 혼돈하다. 내가 했던 행동이나 가졌던 생각들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잔뜩 들 때는 더없이 비참하다. 이미 쏟아져버린 말과 행동과 생각과 시간인데. 나는 어찌도 이리 미욱한가. 세상사는 손에 잡힐 듯 끝내 잡히지 않고 세상은커녕 제 속도 의지대로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밤의 한가운데 자꾸만 눈이 떠지고 천장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한없이 포근하던 이부자리는 갑갑하고 깊은 어둠에도 형광등이 켜진 듯 모든 게 선명하다. 정의하기 어려운 불편감에 잠을 설친다. 분명 오빠와 산책했을 때만 해도 무척 행복했는데 이 설명할 수 없는 참혹한 심정은 무엇일까. 대체 사람들은 자신의 비겁함과 용기 없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또 후회는 어떤 방식으로 오물 처리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유 모를 불안과 자기 비난. 잊으려 하지만 잊히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는 한심한 감각. 아, 피곤해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가장 피곤해 견디기가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상태가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토록 생경 맞다. 나름 좋아졌다고, 봐도 되나. 이 시간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노래뿐이라 오빠가 깨지 않을 정도의 소음을 켜낸다. 위안이 되는 기억도 떠올린다. 구마모토의 어느 산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 저 끝에 보이던 세계,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 눈부시고도 황홀한 하늘, 안팎으로 벅차던 바람, 내 옆의 사랑. 아무도 없이 우리 두 사람뿐. 다시 달리고 달리다 멈춘 곳. 이번엔 드넓은 대지, 황금빛으로 물든 능선, 또다시 내 옆의 사랑. 역시나 둘만이 존재하는 태초의 언덕, 마주한 햇살, 천진하게 뛰놀던 기억, 터지는 웃음, 비 온 뒤 반짝이는 억새, 손을 잡으니 순식간에 생겨난 낙원. 이 하루가 지금의 나를 치유할지 누가 알았겠나. 그래 그냥 살다 보면 가끔 이런 날이 있는 거지. 자기 때문에 힘든 날이 있는 거지. 다들 그런 거라고 혹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살아나가는 거지. 

아니 아니 모두가 아니라도 괜찮아. 오빠, 나 이래도 괜찮은 거지. 혼란스럽고 길을 헤매도 괜찮은 거지. 이 아득한 곳에서, 오빠는 날 꺼내줄 거지. 내가 이해 못 할 내 구석까지 오빠는 이해해 줄거지. 내가 나를 미워할지라도 너는 날 사랑해 줄거지. 네게 용서받고 이해받는다면 그러면 나 괜찮을 것 같아, 이기적 이게도. 네가 내 안에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얼만큼이길래. 네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닌데. 빛나는 그날과 너를 떠올리다 보니 이제야 눈꺼풀이 무거워. 잘 자, 꿈속에서 봐. 그날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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