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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y 12. 2016

우리

지루하다 말할 수 없는 삼삼한 날들.

take 1.


때로 그림 같은 일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생활을 모두 통틀어 그다지 흔하지 않은 시간이다.

연둣빛보다 여리고 순한 시간이 눈물보다 감격스럽다.

함께 산다는 것은, 수많은 감격과 더 많은 슬픔과 헤아릴 수 없는 좌절을 공유하겠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을 견딜 힘을 얻게 된다는 것.



take 2.


take 3.


후미진 모퉁이를 돌아 만났던 평화와,

길의 한 가운데에서 부딪혔던 그리움과,

벽과 땅이 만나는 모서리에 스며있던 축축한 슬픔이,

너를 모르고 살았던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케 한다.

일상은 따뜻한 불빛이었으나,

삶은 고요보다 더한 침묵이었고,

행복보다 더한 가치는 없을 것이라 믿었던 안이함 사이에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동네 길을 다녔을 뿐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길을 잊은 채,

겨울 하늘에 떠 있는 그 수많은 언어들을 지운 채.




take 4.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남을 것은 아마도 이런 것.

더 없이 자잘한 것.

자잘하다 못해 빛이 바래고 숨이 멎는 것.

그리하여 나는 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에 닳아간 우리의 흔적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도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에 수록된 시 '나의 사인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


* 장소 : take 1. - 마카오 '만다린 하우스Mandarin's House' 인근 / take 2. - 일본 교토 시시가타니가미미야노마에초 '철학의 길' / take 3. -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케이분샤 서점'앞 / take 4. - 부산시 중구 남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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