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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Dec 12. 2017



너의 결혼은 삶을 방관하고 삶을 비관하며, 때로는 삶에 대한 허무로 삶을 삶아먹고 싶었던 지독한 청춘의 장막을 마무리하겠다는 듯 보였다. "세상에 대한 타협일까. 삶에 대한 굴복일까."도 생각해보았다. 이런 생각 자체도 모두 지난한 모습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규정짓고 결론 내려했던 소치에 다름없었다. 어쩌면 나는 너와 추운 자취방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삶에 도전하는 자세로 책상을 내려치며 분노하던 그 모습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떤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보고서야 조금은 삶에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더 깊어질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우리는 쉽게 규정짓지 못하는 일들에도 오만하게 굴었음을 또 한번 알게 되었다. 세상을 열어보는 문은 도처에 있지만 '무엇을 열어보느냐'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과 다름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네가 길지 않은 생의 가운데에서 이제야 다른 문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해사하게 웃었다. 단순하게 살았던 듯했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살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쏟아부어도 결과가 좋지 않은 일에 화를 내며, 결과가 좋으면 이내 배부른 아기처럼 웃어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작은 손을 내미는 것. 나도 그렇게 살았어야 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은 저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눈빛에는 생에 대한 강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아마도 너는 그녀로 더 넓은 세상으로의 문을 열지 않을까 생각했다.




* 장소 : 경남 남해군 물건항 어촌마을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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