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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Nov 29. 2016

대장간



어제 들이킨 막걸리 때문인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털어내며 화장실 문을 열어 카악 하고 가래를 모아 뱉는다. 아내는 벌써 새벽 시장에 나가고 없다. 개다리소반에 신김치가 아무렇게나 접시에 담겨 있고 약간 식어진 된장찌개가 뚝배기째 올려져 있다. 거무튀튀한 보리가 섞인 밥에 숟가락이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밥상을 보며 없는 마누라를 불러본다. 아이들이 다 떠난 빈 집에서 이제는 밥벌이를 위한 일인지, 벌다 보니 밥이 된 건지 알 수 없는 일터에, 늦었다 생각하며 대충 밥을 밀어 넣고 또 대충 상을 밀어놓고 더 대충 세수만 하고 나온다. 눈 뜨면 어딘가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젊을 때는 그리도 싫더니 이제는 때로 다행이다 여긴다. 아무도 하지 않는 대장간 일이라 이제 그만해야 하나 싶다가도, 나만 남은 일이라 그런지 언젠가부터 지나는 관광객이 사진도 찍고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기념품으로 사가는 일도 가끔 있다. 그 예전엔 동네에 식당 하는 사람들, 배 타는 어부들,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낫도 보고 부엌칼도 보고 가위도 갈아달래고 그럴 일이 전부인데, 관광객이 칼을 사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요즘은 그냥 지나는 사람 구경이나 하며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거드름 피우는 일이 밥벌이가 되어버렸다.




* 장소 : 경남 통영시 강구안 근처.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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