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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Dec 28. 2023

연애와 돈

현실이다

P와는 처음 송년회에서의 만남 이후 이 주 정도 달곰한 문자와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거의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짧은 안부 문자를 주고받고 밤에는 한 시간여 동안 통화를 하곤 했다. 언제나처럼 S의 마음은 살랑거리는 연애의 감정에 급속도로 빠졌다.     


하지만 실은 어두컴컴한 바에서 몇 시간 만난 것이 전부였다. 얼굴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이주 만에 드디어 만날 약속을 정하면서도 이 관계가 아리송했다. 거리도 상당히 멀고 시작을 해야 할지 긴가민가한 건 서로가 마찬가지. 어느 날은 확신에 찼다가 다음 날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널뛰는 감정.      


만날 약속을 잡으려고 하는 데 P는 하룻밤을 묵을 예정인데 S의 집으로 오면 안 되냐는 제안을 했다. S는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평생지기 친구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아요. 청소하는 것도 번거롭고 제 사적인 공간을 오픈하는 걸 매우 꺼리는 편이에요.”


S는 기겁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P를 설득하였다. 7~8평밖에 되지 않는 원룸에 짐이 한가득한데 누굴 초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런 걸 내가 상관할 것 같아? 우리 관계가 중요하지. 앞으로 우리가 만나려면 비용이 꽤 드는 데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P는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어서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S는 여기에서 마음이 크게 상했다. 이견을 조율하면서 돈 문제 때문인가 싶어 감정이 상한 S가 펑펑 울게 되었고 결국 집으로 오겠다는 P를 말리기는 했다.


여기에서 S는 P의 경제 상황이 상당히 궁금해졌다. 다소 직접 물어보니 그는 수출입 화물을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대기업 못지않은 월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부산에 50평이 되는 집을 소유하고 있고.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이 있어서인지 P는 절약 정신이 투철했다. 이제 처음으로 만나려는 시점에서 ‘데이트 비용 절감’을 논하는 P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S는 연애와 돈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깊이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P가 미래에 어렴풋이 꿈꾸는 바는 자기 집에서 함께 살고 운동이나 하면서 쉬는 게 어떠하냐는 것인데 어불성설이었다.


아직 만남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장기적인 계획으로 보아 현재 데이트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물을 때마다 계속되어 S의 심기를 건드렸다.       


집이 있다고는 해도 현재 데이트 비용이 부족할 정도면 곤란한 게 아닐까? 미래의 어느 날에 S가 P의 집에 방문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간다는 건 불편한 노릇이다. P가 얼핏 언급한 대로 집을 이십 평대로 하여 둘로 나누는 게 맞지 싶었다.      


북극 한파가 몰려와서 영하 10도에 이르는 주말 저녁, S는 KTX를 타고 온 P와 만났다. 그 하루는 괜찮았다.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웃고 떠들면서 따뜻한 연애의 기운도 감돌았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에 전화 통화를 하다가 S는 P에게 크게 화가 나고 말았다.   

   

“넌 참 이기적이야.”      


P는 이 문장을 전 아내를 언급할 때도 늘 사용하곤 했다. 이기적이라니. S는 P의 말에 순간적으로 발끈해서 ‘전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기적이라니 지나치게 이타적이라서 손해를 보고 산 적이 많은 데 무슨 얼토당토않은 평가인지. 가끔 들어보면 P는 심리치료를 권하고 싶을 만큼 전 아내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S와 P의 전 아내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성향은 전혀 달랐다.      


함부로 상대방을 이기적이라는 단어로 평가해도 되는 건가? 대화를 나누며 짐작하기로는 P는 ENTJ(대담한 통솔자) 성향이었는 데 가끔 직설적인 단어를 던져서 상처가 되었다.


P는 끝내 MBTI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S는 MBTI 연구에 심취해서 이제 몇 마디 질문만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맞추는 지경이 이르렀다. 대학로 언저리에 MBTI로 사주 궁합을 봐주는 돗자리를 깔아야 하는지도. INFP와 ENTJ는 최고의 궁합이라고 하나 이것도 믿을 바가 못 되나 보다.      


ENTJ는 변화의 조직자입니다. ENTJ 곁에는 오류나 비효율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류나 비효율은 그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ENTJ는 적극적이고 혁신적이며 장기 목표를 계획하고 설정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렇게 하면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NTJ는 예측 가능성과 통제력이 있을 때 번창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모든 것을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유지합니다.     


언어적 의사소통과 유머에 뛰어난 ENTJ는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히 결정을 내릴 때 때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견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ENTJ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룰 필요가 없으며 종종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ENTJ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강한 성격입니다 (출처: 네이버)     


S는 P가 하는 몇몇 강한 주장에 부딪혀서 크게 화를 내며 감정이 폭발하여 이기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A4 반 페이지 정도를 쏟아내었다. 돌이켜 보니 P와는 별 관련도 없는 온갖 인생의 한을 다 담아냈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언어 폭탄을 맞은 P는 어질어질 해지고 할 말을 잃은 것 같았고.      


저녁에 대화를 시도하려 했으나 P는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통화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이 둘의 소통은 멈추었고 또 다른 주말이 덧없이 흘러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허망한 헤어짐으로 걸어가다니. 인생 참 쓸쓸하다.      


문득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한 시간 연속 듣기를 하면서 S는 스스로 물어봤다.


사랑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네가 차는 게 아니니?


https://youtu.be/QK_ZCdsk8Wk?si=UKV4IRmY_jZfA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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