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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Jan 04. 2024

연상 vs 연하

어느 쪽이든

P와의 결별 후에 S는 마음이 오락가락하며 울적해졌다. 가라앉는 마음을 끌어올리려고 주말에 다시 새로운 밴드 모임에 참석 의사를 밝혔다. P가 떠나간 텅 빈 마음의 자리를 채워 줄 사람들이 필요했는지도.    

   

올해 벌써 몇 번째 눈인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주말 오후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는데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꽤 멀어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눈길을 미끄러지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모임 장소에 찾아갔다.      


처음 가는 밴드 모임은 어색하다. 중국집에서 모였는데 누군가 반가이 맞아주시는 분도 없었고 상당히 늙수그레해 보이시는 남자분들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대여섯 살 많으신데 어쩌면 저렇게 하나같이 노안이실까?     


중국집에서 양장피며 탕수육 등등의 요리들을 시켰지만, 맛은 그저 그러했다. 중국 음식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심심한 간이 된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조미료 팍팍 넣고 자극적인 동네 중국집 짬뽕이 그리워졌다. TV에 방영된 장소라고 손님들이 바글바글하고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싸던지.      


점심을 먹고 근처의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 이 층의 커다란 통유리 창문으로 흰 눈이 소담하게 내린 풍경이 펼쳐졌다. 데이트를 한다면 몇 시간이고 오래 바라보아도 좋을 순간이었다.


카페에서는 조금 더 대화가 오갔고 그중 가장 키가 훤칠한 잘생기고 어린 남자분에게 말을 걸어봤다. J는 S보다 세 살이 어렸고 말을 트고 보니 상당히 귀엽고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MBTI에 관한 화제가 오갔고 대여섯 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궁금해하셔서 J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면서 테스트를 하도록 했다. J는 유통 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 데 영업인의 기질이 엿보였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사교성이 좋았다.      


”물건을 팔아도 잘 팔겠네요. 하하. “      


S는 J가 연하여서인지 농담이 쉽게 나오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훈남이기도 하고. S는 연하를 만나는 게 더 어울리는 걸까? 그 연하님이 좋으시다면야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긴 하나.      


P의 MBTI는 ISTJ로 S와는 내향형 외에는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S는 최근 T 유형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F 성향과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T 유형에 어느 정도로 치우쳐 있는가가 관건이지만 F 성향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곤 했다.


지난 부산 아저씨 P와의 대화 중에 가끔 느끼게 되는 점이었다.      

”그럼 내가 항상 말을 할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 거야? “      


(응, 그래.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니?)


P는 답답하다는 듯 토로했지만, 타인과 대화할 때는 특히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서로를 파악하는 중이라면 누구라도 말은 조심해야 한다.


단어 하나라도 신중하게 내뱉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오해가 생겼다면 사과하고 풀어야 그 관계가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것 중에 ’ 엄마가 너무 슬퍼서 빵을 사 왔어”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이 문장은 앞뒤가 문맥상 호응이 안 되는 것 같다.


기분이 안 좋은 것하고 빵을 사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애써 풀어보자면 기분이 우울해서 스트레스를 풀고자 빵을 사 왔다는 건가?     

 

이 문장에 관해서 T 성향의 아이는 대부분 엄마의 기분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F 성향의 아이는 엄마가 말하는 우울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엄마 왜 기분이 안 좋아?” 이렇게 공감하면서 반문하는 걸 봤다.       


J는 자기는 “엄마, 무슨 빵 사 왔어?”라고 물을 거라고 재치 있는 말을 했다. 달곰한 호감을 듬뿍 넣어서인지 S는 웃음이 빵빵 터졌다.      


“T와 F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오래 이야기하면 피곤해져요.” J는 이렇게 한마디를 더 보탰다. 한동안 깔깔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지만, J는 “누나, 다음에 만나요.” 하면서 카페 모임이 끝나고 자리를 떴다.     


카페 모임 후에 스크린 골프를 치느냐 볼링을 치느냐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W라는 남자분이 어느 모임에 갈 것이냐고 물어보시고 볼링을 치러 가자는 뜻을 비쳤다.


S는 잠시 망설였지만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주말에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무슨 낙이 있겠나 싶어서 볼링을 치러 가는 데 동의했다.      


W의 차를 타고 볼링장에 갔는데 그는 볼링 마니아인 듯 트렁크에서 볼링 장비가 한 아름 들어있는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는 기계처럼 매우 신중한 태도로 매번 공에 묻은 오일을 닦아내고 정확한 자세로 공을 굴렸다. 자세는 마치 프로 같은 느낌이 드는 분이었다.      


S는 마지막으로 볼링을 친 지 이십 년은 된 것 같고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다소 무거운 공을 팔을 똑바로 들어서 굴려야 하는 것도 힘들 뿐이고. 하지만 이 모임은 볼링을 자주 쳐서 꽤 실력 있는 분들이었고 화기애애하게 게임이 끝나서 S는 맥주 한잔하러 가고 싶어졌다.      


치킨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이 모임은 4050 친목 모임으로 기혼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놀라긴 했으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것 같고 기혼자임을 분명히 밝히고 추근대는 건 아니라서 넘어갔다.     

 

맥주를 마시면서 모임의 사람들은 은근히 S에게 W가 매우 좋은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사귀는 게 어떠냐 떠봤다. W에게 크게 끌리는 점은 없었다. 전형적인 배 나오시고 푸근하신 회사 부장님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다음 날도 찜질방에서 모임을 하자고 했고 W는 꽤 진지하게 권유했다. 연이틀 ‘벙개’ 모임에 또 참석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눈이 펑펑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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