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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계 Oct 30. 2020

모스크바의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소설 답지 않으면서도 러시아 소설다운 작품이다. 러시아 소설 답지 않다고 한 이유는 흑마술을 부리는 악마, 말하는 고양이, 하늘을 나는 빗자루와 같은 환상적인 요소를 현실과 동일한 차원에 놓고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 모스크바와 예루살렘을 넘나드는 시공간의 전환이 더해져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19세기 러시아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러시아 소설은 당대 소비에트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1930년대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사회와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소비에트적인 삶을 사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물론, 그냥 보여주지 않는다. 날카로운 풍자와 블랙 유머로 소비에트 사회가 안고 있었던 한계와 부조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을 때는 약간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사는 모스크바, 빌라도가 사는 예루살렘, 불가코프가 사는 소비에트를 염두에 두어야, 세 공간이 겹쳐지는 지대에서 훨씬 풍요로워지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악마 볼란드 일행이 모스크바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의 층위로 구분된다. 흑마술을 부리는 악마 볼란드와 그 일당이 일으키는 소동과 거장이라고 불리는 작가와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의 사랑이 그것이다.


  먼저 볼란드 일행을 먼저 살펴보면, 악마 볼란드, 말하는 검은 고양이 베헤못, 뱀파이어 헬라, 타는듯한 붉은 머리의 아자젤로, 깨진 코안경을 쓰고 있는 코로비예프의 모습은 기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더 기이한 것은 그들의 행동인데, 미래를 예언하고, 사람을 갑자기 순간 이동시키고하고, 뱀파이어로 만들기도 한다. 볼란드 일행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모스크바 전체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의 행동이 단순히 사람들을 놀려주기 위한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회주의 바깥의 것을 배척하는 소비에트의 제도와 권력층을 겨낭한다. 권위주의적인 체제가 일상화된 모스크바에 악마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사회 전체를 경직시키는 기존의 모든 것을 뒤흔든다.  볼란드 일행은 소비에트라는 '악'을 상대하기 위한 또 다른 '악'이다. 악에는 악으로 상대한다.


  그런데 체제만 문제인가? 볼란드의 흑마술은 소비에트 권위주의 체제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에 동조하여 혹은 불의에 눈감고 물질에 현혹된 당대의 모스크바 시민들 탐욕과 비양심을 꼬집는다. 특히, 볼란드와 그의 친구들이 흑마술 쇼가 무대에서 펼쳐지던 날의 극장의 모습은 불가코프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흑마술로 극장 안에 돈이 비처럼 쏟아지자 사람들은 정신없이 돈을 챙겨 나가고, 여성들은 흑마술로 만들어진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몸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흑마술로 만들어낸 돈은 종이 조각이 되고, 옷과 장신구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손에는 종이뭉치를 들고, 벌거벗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맨다. 볼란드의 흑마술은 사람들의 허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인생과 정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쫒고, 주어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속물적인 인간들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 시킨다.



   한편 볼란드의 흑마술은 거장을 구해내고, 그가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소설 속 거장의 모습에는 당의 검열과 통제 속에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방해받았던 불가코프 자신의 모습이 녹아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소비에트의 창작 이념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작품이 집필되고 30년이 지나서야 출판되었다. 불가코프는 거장을 통해 예술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소비에트 체제와 그에 협력하고 있는 문단을 풍자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맞서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양심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거장이 쓰는 소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거장은 빌라도와 예수아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의 소설은 신약 성서의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원본의 내용과 형식을 뒤집는 도발을 보여주는데, 빌라도에게 고난으로 희생된 예수아의 행적을 강조하는 원본과 달리 빌라도가 예수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도덕적 딜레마에 집중한다. 예수아를 처형해서 로마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여 정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로마를 배신하고 도덕과 양심에 따라 선택할 것인지.


  빌라도는 정치적 미래를 선택하여 예수아를 희생시킨다. 끝내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리는 비겁한 빌라도의 모습은 소비에트 체제만을 탓하며 자신의 변절을 합리화하는 소비에트의 일부 작가들과 겹쳐진다. 상황이 어찌 되었던 그들은 작가의 소명의식을 저버렸다. 불가코프는 그들 역시 양심을 저버린 빌라도가 감내해야 했던 죄의식과 스스로의 비겁함을 느끼길 바랬다.


  이처럼 <거장과 마르가리타>에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모스크바와 예루살렘을 오가는 서술 때문에 집중력이 조금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세 가지 이야기의 줄기를 잘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떠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추지 마시길.





1.

  마르가리타는 거장의 연인이자, 뮤즈다. 그녀는 거장의 창작 과정에 활기를 불어 넣는 동시에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다. 마르가리타는 사뿐히 빗자루에 올라 하늘 위로 올라가, 그 어떤 제약도, 장애물도 없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모스크바 전체가 그녀의 발 밑에 있다. 그 어떤 권력과 부조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가장 호쾌한 장면!


'영원히 안녕! 나는 날아갑니다'. 마르가리타는 왈츠를 압도할 정도의 소리로 외쳤다. 그때 그녀는 슈미즈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가리타는 음산하게 낄낄거리고 나서 그것을 니콜라이 이바노비치의 머리에 덮어 씌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는 벤치에서 길의 포석 위로 풀썩 굴러 떨어졌다. 마르가리타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혀온 저택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환한 불빛 속에서 놀라움으로 일그러진 나타시아의 얼굴을 발견했다.
마르가리타는 '안녕, 나타시아!'하고 외치고 빗자루를 위로 쭉 쳐들었다. 그녀는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껏 외치고 뺨을 때리는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문 위를 넘어 골목길로 날아서 나갔다.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2권, 문예출판사, P. 38-39.


2.

 소설에서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활동하는 배경이 아니라, 때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이 그렇다. 소설에서 모스크바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생생하게 묘사될 뿐만 아니라, 서사에 적극 참여한다. 볼라드가 배회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밤거리, 마르가리타가 날아다니는 모스크바의 밤하늘이 우리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모스크바가 하나의 인물처럼 곁에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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