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부족으로 살기? 정말?
2013년 sbs다큐에 나갈 때 조한혜정 선생님이 말씀하신 도시부족에 관한 얘기가 부제로 같이 나갔던 것같다. 그 당시 우리동네사람들은 혈연보다는 비혈연으로 남녀가 같이, 비혼도 결혼도 같이 한 집에 살기로 했었다. 30대 초반이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의 거실 같은 느낌이 있었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오늘은 뭐해? 같이 놀러 갈까~? 와 같은 분위기.
시간이 지나고 결혼과 연애가 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분리를 원하는 사람이 늘었다. 애즈원 공동체에서 말하는 “마음 나는 만큼”이 맥락없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시기가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문화가 단단히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이 망하는 결정적 계기는 여기에 있었다고 느낀다. 외부 이론과 자기 욕구의 결합. 내 맘 읽어주기가 가장 중요한 어른아이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오늘공동체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누가 부부이고 누가 애인 사이고 이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과 이 사람이 특별히 친해보여서 둘이 부부인가보다(오 저런 것도 거리낌없이 부탁하네 하는 맘이 있었다) 싶으면 아니었고, 저 아이가 누가 부모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공동체 행사가 큰 모임에서는 부부는 떨어져 앉고 특히나 친한 사람끼리 앉거나 친밀함을 표시하는 것을 굉장히 나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히 친하고, 특별히 마음 맞는 사람끼리 지내다보면 그 안에서 소외가 발생하는데 소외 당하거나 외로운 사람이 그 말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그런 일은 공동체 만들기를 저해하는 큰 요소다 라는 가치 판단 아래에서의 규칙이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이나 다른 공동체를 할 때 늘 원년멤버 같은 시조새 그룹의 끈끈함, 추억 등이 쌓여 그룹을 만들이 마련인데 오늘공동체는 그것을 매우 경계했다. 단톡방이 있어서 내가 a와 밥 먹으러 가면 저 오늘 몇 시에 a와 밥 먹으러갑니다~ 라고 톡을 올리고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지 저 사람은 오면 좋겠고 이 사람은 좀 그래.. 라는 맘이 드는 것을 매우 잘라버리려고 한다.
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 마음 맞고 더 마음이 가고 더 같이 있고 싶은) 자연스러운 그 마음을 애써 정리를 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이 그룹핑이 된 많은 공동체가 라인 타다 사람 문제로 깨지는 것을 목격파고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감탄했던 부분이다. 그렇지.. 자연스럽게 모두와 친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이성의 영역에서 경계하고 규칙을 만들면 되는데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고 넘겨버렸구나 반성도 했다.
우리동네사람들을 하면서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서운하다, 소외된 거같다, 배제된 거같다는 이슈는 빠짐없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그건 너의 마음이지 실제는 우리는 다 친한거야! 라고 넘긴 순간들이 너무 미안하고 너무 부끄러웠다.
공동체를 이루는 좋은 말들은 그 행위를 만드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오늘공동체에서 커플도 티가 안 나는게 제일 신기하다.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서로 관계하고 개인 대 개인으로 친구가 되어야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로 공적 자리에서 소셜라이징 라이프 보내기에는 공동체살이 아깝다! 하는 그 정신이 진짜 멋있다.
그래서 오늘공동체는 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그룹핑은 계속 바뀌고 부모 아이가 한 부족이 아니기도 하고 재밌는 헤쳐모여 실험이 계속 된다. 그리고 부족별로 자기들끼리만 끈끈해지는 것도 경계한다. 느슨한 연대는 정말 노력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