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라서 그렇지 대안적 삶은 가능한가봐
우리동네사람들이 망할 무렵, 여러 군데의 공동체 얘기를 들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이 2013년 무렵부터 서울시 공동체 가업이나 마을 사업과 연계되고 지원하면서 탐방도 많이 오고 만나기도 많이 들었다. 오만해졌을 때는 우리만한 곳이 없다고 느꼈다. 다들 규칙이 많고 갈등이 많은데 우리동네사람들에서 우리는 규칙은 만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말을 하고 또 그렇게 느꼈던 거같다. 사람의 선함에 기대어 이어지고 많이 울지만 또 울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순간이 있었다. 2012~2015년의 카페 오공은 늘 사람이 있었다. 일을 하려고 모였지만 우리는 마음 나누기를 5시간씩 하고 마음이 꽉 채워져서 집으로 갔다. 우리동네사람들의 대표이자 카페오공의 대표인 조정훈은 차분하게 사람을 이끌었다. 귀기울여 경청을 하고 자신이 매일 먼저 나와서 비질을 하고 가장 더러운 쓰레기를 치웠다. 리더라면 좀 잘난척하거나 나대는 모습을 봤던 나로서는 배울 점이 많다 존경스럽다고 느꼈다.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전국 각지의 공동체도 많고 서울에도 빈집, 우리, 우주 하우스, 민달팽이 유니온, 성미산마을 등 셰어하우스도 많고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새로운 모습으로 생겨나던 것이 2010년대의 한국이었다. 뭔가 새싹이 움트는, 다른 삶을 살아볼까? 도시의 청년으로 대안적 삶은 가능할 것인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고 인사하고 여기저기서 행사가 생기고 일-주거-여가를 해소하고자 기운이 꿈틀댔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커뮤니티들이 자라날 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