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교생 실습을 나간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4학년 때 한 달 꽉 채워 다녀오는 교생실습 외에도 한 번의 실습이 더 있었는데, 3학년 2학기 2주간의 ‘참관실습’이 그것이었다. 사범대학은 본래 중등 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곳인데, 참관실습은 초등학교에서 일주일을, 특수학교에서 일주일을 참관교생으로 지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효성과는 별개로, 다른 학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다는 이 실습 교육이 좋았다. 다양한 교육학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대학이 제공해준 것이니까.
배정받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섰을 땐 이미 그 초등학교에서 실습생 별로 학년과 반을 정해둔 상태였다. 나는 1학년 반에 배정을 받았다. 말 그대로 참관이 중심이 된 실습이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참관교생은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교실 뒤에서 열심히 지켜보았다. 1학년 수업은 조금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편견과는 달리, 수업은 베테랑 선생님의 뛰어난 카리스마 아래 나름대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고, 발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더욱 그 친구가 내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왜소하고 조용한 여학생이었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교실 앞보다는 뒤쪽에 가까운 위치에 앉아 있었다. 주변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다른 친구들이 손을 들 때 처음엔 가만히 있다 수업 후반부에야 소심하게 손을 드는 타입이었다. 많이 움직이는 편도 아니어서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아직 이 교실의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 같아 보였다.
담임선생님은 누구 한 명만을 특별히 챙기거나 보살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편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최대한 공평하게 2-30여 명의 학생들을 대해야 한다. 나 역시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이 반에 있으면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그 친구에게 눈길이 갔다. 그 아이는 너무나 초등학생 때의 나를 닮아 있었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 왁자지껄한 공간에서 나 자신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아직 체득하지 못했을 때의 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공간에서 내가 취하는 태도 역시 비슷했다. 외향적인 사람은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기 때문에 나에게도 손을 내밀고 나 역시 고마운 마음으로 그 손을 맞잡지만, 정작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언제나 나와 비슷한 질감을 가진 내향인이었다. 낯선 곳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주변을 탐색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괜히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걸곤 했다. 서로 어색하게 삐그덕거리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나면 어느새 편안함이 나와 그 사람 사이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런 이들과는 연락도 대체로 길게 이어지곤 했다.
1학년 반의 점심시간, 아주 적극적인 아이들이 먼저 교생에게 다가온다. 거침도 스스럼도 없다. 그 저돌성은 물론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는 “선생님, 우리 같이 도서실 가요!”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끄는 학생과 함께 도서실에 가서 책도 읽어주고, 운동장에서 놀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오면 언제나 눈길로 그 친구를 좇았다. 그리고 매일 한 두 마디 정도의 말을 걸었다. 대답은 조용하고 짧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 친구가 지금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이를 제대로 위로할 수 있다고 했던가. 아픔까진 아니어도 그 어려움을 잘 이해하기에, 약간의 용기를 내어 자꾸 말을 건네 보는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는 세상, 소리 내지 않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도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