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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27. 2024

소설

| 소설. 24 절기 중 20번째 절기이며 첫눈이 내리는 날이다. 나는 소설(小雪)을 앞두고 소설(小說)을 쓰고 있었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는 초고는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조금 늦게 내려주어 감사했다. 퇴고하는 오늘은 첫눈이 내렸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내린 눈일 수도 있지만, 아침에 직접 창문을 열었을 때 처음 내린 눈을 나는 여태 첫눈이라 불러왔다. 하얗게 뒤덮인 동네 골목의 풍경처럼, 초고에 쌓인 단어를 쓸어낼 시간도 다시 오겠지.


| 우리 집 고양이 영심도 창문으로 와서 내리는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던 창틀은 차갑게 얼어있어서 따뜻한 극세사 옷을 입혀 가까운 캣타워 위에서 눈을 감상하도록 도와주었다. 한때 길고양이였던 영심은 눈을 보며 그때를 떠올릴까, 아니면 그저 보는 것뿐일까.


| 눈은 깨끗하고, 빛나고, 폭신하고, 발자국을 남기고, 얼어붙고, 미끄럽고, 더러워졌다가 결국엔 녹는다. 


| 얼마 전에 주문한 '소설'이라는 이름의 커피 원두가 마침 첫눈이 내린 오늘 도착했다. 끓인 물에 천천히 적셔지며 여과되는 원두의 향을 맡을 때 겨울의 행복을 느낀다. 카페인을 줄이겠다고 다짐했던 가을에서 다시 카페인이 필요한 겨울로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 이틀 내내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집에만 있었는데, 밖에 다녀온 남편의 안경에 서리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밖에 나가 쌓인 눈이 녹기 전에 밟아도 보고, 집 앞이 얼지 않게 쓸기도 해 봐야지. 집안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고 와야지. 눈은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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