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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에서 온 조카

[노파에세이]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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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에서 일하는 동생이 모처럼 한국에 들어와 2024년 마지막 날을 함께 보냈다.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정상성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묘하게 뿌듯했다.


정상성이란 것은 때때로 폭력적이고 대체로 지루하지만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앞의 두 가지를 압도할 정도로 크다.


아이라는 존재 덕분에 나는 난생 처음 ‘애슐리’라는 곳을 예약했고, 내가 여지껏 애슐리를 안 가봤다는 사실에 동생은 무척 놀랐고, 나는 다만 아웃백과 토니 로마스를 좋아했을 뿐이라고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나저나 아웃백과 토니로마스를 제치고 애슐리가 최종 승자가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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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아들이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묻길래 오늘은 서른아홉이지만 내일은 마흔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다섯 살 어린이는 ‘마흔’은 모르고 대신 ‘만’을 알아서 나를 ‘만’ 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듣고보니 다섯 살 아이에겐 마흔 살이나 만 살이나 비슷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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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잠시 아이와 둘이 있으라는 어려운 미션을 주고 떠났기에 뭘 할까, 하다가 대충 개구리를 그려줬다. 아이는 그건 개구리가 아니라고 했다. 역시 아닌 것을 기다고 하기에는 다섯 살 어린이는 너무나 정직한 존재다.


아이는 내처 제가 그려보겠다며 집과 해와 네 개의 형체를 그리더니, 그중 세 번째 형체가 나라고 했다. 나머지는 엄마, 아빠, 자신. 단란한 세 가족 사이에 누추한 나를 끼워주어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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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 같은 세 시간을 보낸 후(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실제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 남들보다 더 오래 살고 싶으면 아이를 키우면 될 것 같다) 아이의 아버지가 모자를 태우러 왔다.


단란한 세 가족이 하하호호 웃으며 내 앞을 쓩 떠나가는데,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성취해도 지금 저 세 가족의 웃음보다 빛날 순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동생은 시댁으로 양력설을 쇠러 가는 길이고, 한국과 우즈벡을 오가며 아이를 키우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모르는 바 아니나,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저들 세 가족은 휘황하게 빛났고 나는 길 위에 버려진 추레한 늙은이처럼 느껴졌다.


이런 감정을 실제로 느끼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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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레한 늙은이는 동생이 우즈벡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들 중 꿀과 피스타치오를 골라 꿀물은 홀짝홀짝 마시고 피스타치오는 오독오독 까먹으며 <새왕의 방패>를 읽다가 우즈벡 가죽으로 만든 책갈피 냄새를 맡으며 쓸쓸하게 2024년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역시 내겐 추레한 늙은이의 쓸쓸한 삶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그 삶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무척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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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동생은 내게 사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너는 괜찮냐고 되물었더니 동생은 아이를 낳은 이후 한 번도 사는 게 어렵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어렵고 고단하고 쓸쓸한 인생에도 맛은 있어서, 동생은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더없이 행복한 얼굴이 되었고, 나는 모자의 이 순간을 글로 쓸 생각에 활기가 돌았다.


그 순간 가난과 쓸쓸함밖에 남은 게 없을지라도 내 삶의 무엇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섯 살 유준이가 삶을 불평하면서 백 살, 백이십 살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고작 이런 것을 바래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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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그 모든 맛을 강제로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하면, 일가족이, 어린이가, 한순간에 그 모든 것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려 견디기 어렵다.


안전 비용까지 아끼겠다고 행정가들에게 비싼 밥과 여자를 대줬을 기업인들. 그것들을 처먹고 안전 기준을 낮춘 입안을 통과시킨 권력자. 그리고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그저 악의에 차 짐승의 말을 뱉어대는 키보드 뒤의 인간들.


이들 모두가 179명 사망 사건의 책임을 촘촘하게 나눠진 가해자고 살인자들이다. 이들을 잘게 잘라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들을 잘게 잘라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왜 옛날 사람들이 광장에서 형을 집행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가해자의 죽음만큼 확실한 애도는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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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2025년에는 안전한 한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것만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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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70932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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