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조용한 용기를 꺼냈다.

내가 나를 데리고 가는 중

by Helia

골목을 벗어난 건 처음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설었다.
수리소를 나선 뒤 처음 마주한 거리는 조용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적고, 자동차도 많지 않았다.
햇살은 골목 끝을 지나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고,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은 아이의 뺨을 간질이며 반가움을 전했다.
그렇게 아이는, 수리소의 시간을 조용히 가슴에 안은 채 새로운 길 위에 섰다.

"겁나지 않아?"

아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언제나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아주 낯익은 물음.
혼잣말인지, 오래된 기억 속 누군가의 음성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 질문은 어김없이 아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의 걸음이 아주 잠시 멈췄다.
신발 끝에 쌓인 먼지를 털 듯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고 투명한 하늘이었다.
무언가를 감추지 않는 하늘.
겁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은 여전히 두려웠고,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등에 지고도 걸어 나갈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라는 걸, 아이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손가방 안쪽에서 손수건이 조금 삐져나왔다.
어릴 적 어른이 건네준, 수리가 덜 된 헝겊 손수건.
잘못 박힌 실밥이 귀여운 주름처럼 남아 있던 그것은
늘 아이의 울음을 조용히 닦아주었다.
가끔은 무릎을, 가끔은 볼을,
어쩌다 한 번은 꿈을 닦기도 했다.

아이는 그 손수건을 다시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어주는 물건.
기억을 품은 물건.
그것을 다시 접어 조심스레 가방에 넣으며, 아이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괜찮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어쩌면 그동안 말없이 곁을 지켜준 세상의 조각들,
혹은 이제는 더 이상 곁에 없는 이들에게.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넜다.
물소리가 졸졸 흘러내렸고,
바람은 물 위에서 유유히 노를 젓는 것처럼 움직였다.
벚나무 아래를 지나가다 보니,
하얀 꽃잎이 머리 위로 살짝 떨어졌다.
봄은 그렇게 조용히 와 있었다.
누구의 허락도 없이,
누구의 기대도 없이,
그저 제 시간이 되어 도착하듯 말이다.

신발 끈이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수리소에 있을 때는 늘 어른이 묶어주었지만
이젠 그런 손길이 없다.
아이는 주저 없이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을 묶었다.
처음엔 매듭이 삐뚤었지만,
다시 한번 풀고, 다시 묶었다.
이번엔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매듭이 단단하게 조여지는 느낌이 들자,
아이의 가슴도 살짝 든든해졌다.

그 순간, 지나가던 노인이 아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였고, 노인도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아이는 그 짧은 눈 맞춤 안에서
무언가를 건네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안부.
그건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조용한 용기란 그런 것이었다.
눈물 대신 숨을 고르고,
불안 대신 발을 내딛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자기의 속도로 나아가는 일.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일.

한참을 걷다, 아이는 작은 공원을 발견했다.
벤치 하나가 햇살을 담고 있었다.
그 위에 앉아 아이는 가방에서 별을 꺼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별.
유치하다고 놀림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그 어떤 보석보다 소중했다.
그 별은 어릴 적 밤하늘을 보고 싶을 때마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던 별빛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아이의 손바닥 위에 별이 올라왔다.
빛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잊히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번엔 조금 더 또렷하게 들렸다.
아이 안의 목소리도, 바람도, 햇살도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해 주는 듯했다.

조용한 용기를 꺼낸 오늘,
아이는 드디어 스스로를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누가 이끌지 않아도,
누가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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