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줘서, 내 곁에 와 줘서
지난 11월 26일은 뭉구의 한 살 생일이었다.
처음이니까, 거창하지는 않아도 조금쯤 특별하게 챙겨주고 싶어서 냉장고에 든 재료를 탈탈 털어 조촐한 생일상을 차렸다. 고구마와 닭가슴살과 달걀노른자로 작은 케이크를 만들고, 조각 치즈를 얹고, 초를 꽂고, 몇 가지 간식을 도일리 위에 늘어놓은 것이 전부인 생일상이지만 빨간 보타이를 맨 뭉구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제법 생일잔치 느낌이 났다.
좋아하는 음식을 눈앞에 둔 채 사진을 찍는 일이, 뭉구에게 얼마나 큰 인내심을 요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빠른 속도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초를 켠 사진은 혹시라도 뭉구가 달려들까 봐 걱정스러워서 딱 두 장만 찍고 얼른 촛불을 껐다.
예쁜 기념사진을 남기고, 줄곧 기다리던 케이크와 간식을 와구와구 먹는 뭉구를 보노라니 불현듯 감회가 새로웠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 우리 집에 온 조그만 강아지가 어느덧 8킬로그램이 넘는 개린이가 되어 첫 생일을 맞이하다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뭉구 없이 살아온 시간이 뭉구와 함께 지낸 시간보다 훨씬 긴데도 뭉구가 없던 지난날의 삶이 더 희미하게 느껴진다. 뭉구를 만나기 전에도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뭉구와 함께 지내면서 느끼는 행복은 내가 알던 행복과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전에는 순간적으로 돋아난 행복감이 사라지면 텅 비어 황량해진 마음속에 쉬이 절망이 움텄는데, 지금은 삶의 밑바탕에 은은한 행복이 깔려 있어서 쉽게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지지 않는다. 절망보다는 희망의 꼬투리를 잡고, 부정보다는 긍정의 언덕에 올라서려 노력한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는 뭉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저 우리 뭉구가,
평생 보살피고 싶다고.
뭉구가 아무런 걱정 없이 맛있는 맘마를 먹고,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마냥 즐겁지도 않을뿐더러 속상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울컥 돋아난 괴로움 위로 해맑은 미소가 내려앉으면 풋, 웃게 된다.
뭉구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을 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잊는다. 미소 짓는 뭉구의 눈빛 속에는 언제나 절대적인 사랑이 담겨 있다. 저토록 완전하게 나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니, 바로 그 존재에게 내가 미소를 안겨줄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과연 또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깟 개한테 그렇게까지 마음을 주느냐고, 고작 개 한 마리한테 무슨 유난을 그리 떠느냐고.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뭉구가 나에게 주는 만큼 되돌려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실은 내가 아니라 뭉구가 나를 키워주고 있다는 것을.
2015년 11월 26일에 태어나 이제는 8킬로그램이 넘는 중형견이 된 재패니즈 스피츠.
내 눈에는 언제까지고 귀여운 아가일
매일 존재만으로 나를 구원하는
태어나주어 고맙고,
내 곁에 와주어 고마워.
오래오래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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