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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Mar 29. 2017

그냥 행복하면 돼

걱정은 내 몫이니까

뭉구는 아직 어리고 건강한 개이지만 나는 자주 뭉구의 건강을 염려한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말하기는커녕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생명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보니, 뭉구가 아픈데도 둔한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뭉구의 시간은 인간인 나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 어쩔 수 없이 뭉구는 나보다 빨리 늙고,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나는 뭉구가 되도록 오래 내 곁에 있기를 바란다. 크게 다치거나 중병을 앓는 일 없이 모쪼록 천수를 다 누리고 편안하게 떠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늙고 병들어도 괜찮아>라는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나이 든 뭉구에게는 노화로 인한 심신의 쇠퇴가 찾아올 테고, 어쩌면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뭉구 앞으로 적금을 들어 둔 이유도 그래서다. 언제라도 뭉구가 갑자기 아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건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우리 뭉구가 마냥 건강할  알았나 보다.


집순이의 전형인 내가 모처럼 장시간 외출한 날, 집에 돌아왔는데 나를 반기며 짖는 뭉구 목소리가 이상했다. 목에 무언가 걸린 모양인지 걸걸한 소리로 "컥,커컹!" 하고 짖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두어 차례 헛구역질을 했다. 깜짝 놀라서 목 주변을 쓰다듬으며 행동을 살폈다. 진정된 뭉구는 평소와 다름없이 까불고, 간식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목 혹은 다른 부위에 무언가 걸리지는 않았는데, 깨끗한 까만색으로 찍혀야 할 폐 공간이 미세한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렸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뭉구 폐가 아프거나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아주 건강한 상태도 아니라고 했다.


"선천적으로 조금 약하게 태어났다고 보시면 돼요. 지금은 어려서 괜찮지만 네다섯 살쯤 되면 쉽게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해요. 먼지 날리지 않도록 청소에 신경 쓰시고, 향수나 방향제는 절대로 뿌리시면 안 됩니다."

 

선천적으로 폐가 약하다니. 

정작 걱정했던 증상은 별 문제가 아니어서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진단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심란한 누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뭉구는 병원에 갔는데 주사를 맞기는커녕 강아지 친구들을 잔뜩 만나고, 오랜만에 다른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산책까지 하니 신이 난 눈치였다. 연신 빵긋빵긋 웃으면서 내가 부르면 귀까지 젖히고 달려왔다. 그런 뭉구를 보고 있자니 픽, 웃음이 났다.


야, 너 폐 약하다며!


이러니 모르지. 여태껏 잔병조차 앓은 적 없이 펄펄 뛰는 모습만 봐 왔으니, 타고나기를 폐가 약하게 태어났을 줄은 꿈에도 모를 수밖에….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을 계속 곱씹는 짓은 멈추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큰 병이 생긴 것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조금 약하게 태어났을 따름이니 앞으로 더 신경 써서 보살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엑스레이를 찍기 전이나 후나 뭉구로서는 별다를 바가 없다. 타고난 폐 기능이 약한 줄 몰랐어도 뭉구는 이제껏 잘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미세먼지가 뭔지 모르는 탓에 이따금 왜 누나가 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지 않을까 갸우뚱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요컨대 뭉구는 괜찮다. 그저 내 몫으로 주어진 걱정이 조금 늘어났을 뿐, 뭉구의 일상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도 잘 싸는 내 강아지가 앞으로도 맘껏 뛰놀며 웃을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산책을 자제하고, 대신 실내에서 아낌없이 놀아주고, 집에 공기청정기를 들이고, 폐에 좋은 음식을 먹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뭉구는,

그냥 행복하면 된다.

뭉구가 행복하면 내 걱정은 뭉구의 행복에 불을 지피는 땔감으로써 황홀하게 사라질 테니까.


그러니 뭉구야, 아무 걱정일랑 말고 내일도 오늘처럼 신나게 놀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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