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란 Jan 13. 2017

내겐 너무 귀여운 훼방꾼

뭉구 홀릭 누나, 누나 껌딱지 뭉구

시도 때도 없이 뭉구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는 나를, 친구들은 농담 삼아 뭉구 스토커라고 부른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농담이기는 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뭉구의 스토커가 아니다. 뭉구를 향한 내 열렬한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뭉구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누나 껌딱지다.


누나 일하다 말고 어디 가개
누나가 뭘 하든 지켜볼 거개

누나(=나)가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하면 식탁 아래로, 빨래를 널면 건조대 밑으로,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 문 앞으로 와서 철퍼덕 주저앉는다. 어디 그뿐인가.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는 누나 감시하기가 첫 번째 취미요, 누나 일이 바쁘거나 말거나 장난감을 물고 와 놀아달라고 보채기가 두 번째 취미다.


장난감 몇 개를 물고 왔는데도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두 발로 벌떡 일어나 나를 툭툭 치고그 방법마저 통하지 않으면 의자 밑에 대자로 드러눕기를 시전한 뒤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누난 일하개, 나는 정~말 괜찮으니 계~속 일하개

좁은 자리에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누운 모습이 내 눈에는 참 불편해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편한 모양인지 누운 자세 그대로 잠들 때도 많다. 그렇다 보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의자를 뒤로 뺄 때 반드시 아래를 확인한다. 혹시라도 뭉구가 누워 있는 줄 모르고 움직였다가는 큰일 나니까. 뭐, 그래도 요즘처럼 추울 때는 발치에 드러누운 뭉구 배 밑으로 발을 집어넣으면 따뜻하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여하간 뭉구와 나는 집순이인 내가 아주 가끔 외출하는 날이 아니면 거의 같은 공간에 있는다. 그리고 뭉구는 누나가 자기를 내버려 두고 하는 모든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그 관심은 종종 훼방으로 변질된다.


이런 훼방꾼 노릇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매일같이 자기를 찍던 누나의 카메라 렌즈가 다른 대상으로 돌아갈 때다. 내가 찍을 물건을 바닥에 배치하고 카메라를 들면 뭉구는 어김없이 끼어든다. 냉큼 머리를(정확히는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린 다음 냅다 발로 밟거나 입에 물려고 든다. 



잠깐만 저쪽으로 가라고 사정을 해 봤자 쇠귀에 경 읽기다. 뭉구를 달랑 안아 들어서 다른 자리로 옮겨놔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달려와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엎드려 깽판을 친다. 그만 찍으라며 왕왕 짖는다.


더 찍었다가는 재미없을 줄 알개!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 정말이지 프로 훼방꾼이 따로 없다. 더군다나 뭉구에게는 팔불출 누나의 심장을 저격하는 특급 무기가 있어서, 가련한 누나는 갖은 방해를 당하면서도 털북숭이 훼방꾼을 제대로 말리지 못한다.


누나에게만큼은 언제나 백발백중인, 뭉구의 특급 무기는 (당연하게도) 귀여움이다. 사진 한 장 편하게 못 찍는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막상 뭉구를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지고 만다. 후다닥 달려와 납죽 엎드리는 모습이며, 얼른 저를 봐달라고 깡깡깡 짖는 표정 하며… 어떤 포인트에서건 일단 "귀여워!"라는 생각이 들고 나면 내 마음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외침만이 울려 퍼진다.


어머, 이건 꼭 찍어야 돼! 


마침 손에 카메라도 들려 있겠다, 신이 나서 뭉구를 찍기 시작하는 내가 나도 좀 어처구니없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바로 팔불출 개 집사인 것을. 도대체 나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가 궁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뭉구 옆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아예 처음부터 뭉구도 같이 찍자!

뭉구를 조연 혹은 단역으로 등장시켜서 사진을 찍자!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1. 나는 초콜릿 사진을 찍고 싶은데, 예상대로 뭉구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2. 먼저 낯선 대상이 궁금한 뭉구에게 냄새를 맡게 해준다. 물건을 바닥에 내려두지 말고 손에 든 채로! 그래야 뭉구가 물건을 깨물어도 당황하거나 뺏기지 않는다.


3. 뭉구의 탐색전이 끝나면 "기다려!"를 외친다. 그리고 미리 생각해 둔 자리에 물건을 배치한다. 뭉구가 움직이려고 하면 재빠르게 간식을 상납한다. 


4. 사진을 찍는다. "나는 먹지도 못할 거 들고 있으면 뭐 하나~"라는 표정의 뭉구가 너무 귀엽지만! 너무 많이 찍었다가는 뭉구 님이 노하실 테니, 잽싸게 몇 장만 찍은 뒤 즉각 보상(=간식)을 제공한다.


이제는 뭉구도 제 나름대로 적응이 된 모양인지, 내가 카메라를 들면 "누나가 또 시작이네"라는 눈빛을 보낸다. 예전보다 훼방도 훨씬 덜 놓는다. 아무래도 우리 뭉구 마음속에 <사진 찍기=누나의 관심+간식!>이라는 공식이 세워진 것 같다. 그 덕분에 요즘은 사진 찍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사실 생각해 보면 비단 사진 찍기뿐만이 아니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달라서 일종의 조정 기간을 거쳐 평화로운 일상을 구축한 것은. 


내가 화장실에 가면 뭉구는 여전히 문 앞까지 따라오지만, 이제는 내가 화장실 문을 완전히 닫아도 짖지 않는다. 내가 밥 먹을 때는 자기도 꼭 식탁 주변에 있어야 하지만, 누나가 먹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보채지 않는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뭉구는 의자 밑에서 인형을 물어뜯는 중이고, 나는 혹여라도 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앉은 자세에 주의를 기울인다.


뭉구 홀릭 누나와 누나 껌딱지 뭉구는 이렇게 같이 산다. 가끔은 서로 고집을 피우고, 때로는 서로 양보하면서 꼭 붙어 지낸다. 바라건대 부디 우리가 되도록 오래, 아주아주 오래 지금처럼 지낼 수 있기를.




<귀나구> 매거진 다른 글 읽기

아래 적힌 매거진 제목을 누르면 모든 글이 모여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귀여움이 나를 구원한다



이전 16화 고마워, 고마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