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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언제부터 난 거울 속 내 모습을 혐오했나



처음부터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 세계가 있다. 가령 지루한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우악스레 먹었던 앙버터와 설탕 시럽으로 범벅된 도넛, 군침이 감도는 중독적인 배달 음식과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과 꿈꾸는 미적 기준 사이의 낯선 간극과 같은 것. 어째서 사진 속 내 모습은 실제보다 더 뚱뚱하고, 얼굴이 비뚜름하며 균형이 전혀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지목하며 자신을 경멸했다.  키도 작고 얼굴도 큰데, 살까지 찌면 끝이야!라고 생각하며 나는 매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검열하는 데 열중했다. 어느 날 누가 심어 두고 간지 모를 불안의 씨앗은 정성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열등감과 불안, 스트레스를 자양분 삼아 몸집을 키웠다. 무심코 돌아보니, 그 두려움은 실제 하는 나를 압도할 만큼 키가 성큼 자라 있었다. 


 내가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건 스물세 살 때였다. 단 한 번도 말랐던 적도 없지만 과도하게 비만의 상태였던 적도 없는 나는 오랫동안 살과 외모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며 겉으로 보이는 외형을 바꾸는 데 힘썼다. 열중하는 노력의 강도는 다르지만, 다이어트와 외모에 대한 관심은 많은 여성들의 고민이기에 대단히 심각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반복적으로 겪는 건, 그 열망을 관통하는 사회적 의식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에 영향을 받아 문화가 조성되고, 유행이 형성되며 어떤 세대가 집단으로 만들어진다. 주류의 문화와 의식 안에선 문제적 상황도 다수의 사람들이 수용하고 받아들일 만한 자연스러운 진리로 둔갑하기 쉽다. 지금 사회에서는 ‘여성의 다이어트’와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욕망’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다이어트 욕구를 자극하는 운동 영상과 억제된 식욕을 해소해 줄 빨간 맛의 먹방이 수평선 상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다이어트와 운동 주제뿐 아니라 요리 채널도 공존한다. 다른 이가 쩝쩝 거리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우는 장면에서 만족의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난 먹방을 보지 않지만 먹는 것에 있어서는 열띤 애정을 갖고 있어서 여러 레시피를 찾아보는 편이다. 그 영상들을 시청하다 보면 내 욕망이 양 극단에 있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에 열중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영상 속에는 과도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크리에이터가 나온다. 그들이 갓 튀겨낸 치킨과 피자를 먹는데도 몸매를 유지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 무렵, 크리에이터는 효과 빠른 다이어트 보조제를 '강력 추천'하며 구매를 유도한다. 보조제 한 알이면, 음식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듯이.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도 다르지 않다. 패널들은 아침에도 갸름하고 생기 넘치는 얼굴로 다이어트차를 마시며 말한다. ‘이게 요즘 그렇게 좋다며? 체지방 분해랑 붓기에 효과 최고야.’ 높낮이가 없는 대사와 함께 그들이 마시고 있는 제품의 브랜드가 클로즈업된다. 이런 영상을 보면 나는 부러운 마음과 불안을 안고 채널을 돌리거나 그들이 ‘뭐든 가능할 것처럼 소개하는 다이어트 명약’에 혹해서 결제를 해댔다. 부러움과 열등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내 몸’은 어딘가 부족하기에 그런대로 봐줄 만하게 보이려면 혹독한 단련과 개조가 필요한 대상이었다. 그 수리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 시간을 체중계와 거울 앞에서 낭비했다.


 난 매스컴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는 연예인들과 척 보기에도 눈에 띄는 예쁜 얼굴로 주목을 받는 친구를 보며 부러워했다. 나 자신을 그들 사이에 놓아둔 채 그 간극을 줄일 방도를 고민했다. 내 키가 좀 더 커지면?, 얼굴이 더 갸름해진다면?, 팔뚝과 허리가 가늘어진다면?, 가슴이 더 풍만해지면? 여러 가정을 더하며 나는 게임 아이템을 모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듯 미약한 자신을 창대하게 키우고 싶었다.  나도 그들처럼 아름다움을 무기 삼아 어렵지 않게 주목받을 수 있는 주인공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유리한 상황을 독점하는 그들의 우월함을 시기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많은 여성들의 다이어트의 계기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들이 외모와 몸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될 때 작동하는 자기 비난과 자책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이에 대해선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러네이 엥겔른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판단하고, 혐오하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자기 대상화’라고 설명한다. 


소녀와 젊은 여성은 자신의 외모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요구하고 눈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배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는 인식을 내면화한다. 결국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자신의 외모에 가장 밀접한 관찰자가 되고 가장 끈질긴 감시자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 자기 대상화는 신체 감시, 또는 신체 모니터링이라 불리기도 한다.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대상화하여 감시하는 과정에서 냉철한 검열은 시작된다. 분명 잘 맞았던 바지의 버클이 제대로 잠기지 않는 문제부터, 무방비하게 깔깔거리며 웃다가 찍힌 옆얼굴의 접히는 턱 라인과 힘을 주지 않으면 불룩 나온 묵직한 아랫배까지 모두 수정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나는 스스로 규칙과 규율을 지키기를 요구하는 사감 선생의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을 괴롭혔다. 그 검열과 비난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인가, 하고 돼 물어보면 내 안의 연약하고 가련한 내면 아이가 속삭였다.


난 예뻐지고 싶다고,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마땅히 애정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간절하다고. 


그 아이의 눈물 섞인 고백 뒤에는 현실과 맞닿아있는 차갑고도 자조적인 말이 이어졌다. 


‘타고나게 예쁘지 않은 게 억울하겠지.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뚱뚱해지면 네가 받을 대우는 지금보다 더 못해. 젊음을 뽐낼 수 있는 풋풋한 나이도 지났으면 부지런히 관리라도 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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