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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끝은 반드시 온다

자판기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생각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공부 따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치열하게 공부하며 희구하는 게 선생이라니. 단순한 이유로 임용고시를 택한 지난 시기를 떠올리자 그 간소한 절차가 좀스레 우스웠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이유가 선생이라는 사실에 대한 회의. 절생하여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에만 쏟은 지 3년 째다. 종종 머릿속을 종작없이 헤집는 회의감은 ‘선생’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자조적 비하나 괄시적 평가절하 때문은 아니다. 단지 내 꿈의 크기가 무의 한 열패감에 앞질러 현실적인 범위에서 협소하게 짜인 것에 대한 허무에 가까웠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으레 “아이들을 좋아하시나 봐요.”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대한 본심은 ‘그럴 리 가요, 원하는 건 단지 안위를 책임져 줄 안정적인 환경이에요.’였지만 구태여 속내를 말하지 않는다. 희미하게 웃으며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렸을 때? 어렸을 때부터의 꿈? 그 표현 뒤에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붙이자 내 꿈이 본래부터 선생님이었다고 믿길 정도의 실감 난 착각에 사로 잡힌다. 무언가를 미리부터 정해두기보다 이루어진 뒤에 내 의지와 맞아떨어지는 수순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임용 고시를 준비하는 건 내 꿈에 대한 의지가 발현한 것이라고 덮어두고 믿기로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선동적 목표와 맹신에 가까운 의지가 필요했다. 물론 그 의지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없다. 선생님이 된다는 건 소망이나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의무에 가까웠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 내리자면 그 직업에 어울리진 않는다. 미래를 이끌 주역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거나 교육시키는 것에 관심 따위 없었고, 약동한 아이들의 활기를 따라 잡기엔 의욕과 생기가 전무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도움을 줄만한 전인적 인격도 갖추지 못한 걸 보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인격체이긴 했다.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하고 싶다는 원대한 교육열은 없었지만 선생이 되기로 결심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어물쩍 거리며 시간 낭비하기보다 빠르게 한 길에 정주하여 살기로 한 건 이성적인 판단이다. 내가 바랐던 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공고한 틀 같은 것이었다. 어떤 액체나 물질이든 차례로 부으면 동일한 것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는 거푸집 같은 것. 안정감 있는 삶을 주조하는 데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무난하고 합리적이었다. 그 틀을 채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원래 꿈은 선생님이 아니라 방송 작가였다. 왜 그 꿈을 포기했느냐에 대한 연유를 설명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누군가의 실패한 사담은 취기가 올랐을 때에야 들어줄 법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간략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된다는 건 확실한 경로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재능이나 운이 따라줘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막연한 낭만과 여유가 느껴지지만 불규칙한 날씨처럼 고르지 한 통장 잔고가 문제다. 

 어느 순간 글쓰기에 대한 꿈을 접어두고, 삶의 윤곽을 명료하게 정리해 나갔다. 꿈에 가려져 있던 현실의 장막이 열린 뒤 느껴지는 고도감에 숨이 막혔다. 여러 고민  끝에 생활을 위한 올바른 처치는 안정감 있는 직업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문학과에서 유일하게 해 둔 건 혹시나 하는 미래의 불안을 잠재울 요량으로 취득해 둔 교직 이수 자격이었다. 그 자격이 공무원이 아닌 선생이라는 직업을 택한 단순한 이유였다. 글쓰기에 대한 꿈을 내려둔 뒤에는 사적인 일기조차 쓰지 않는다. 소설이나 에세이  따위의 책도 멀리했다. 시험 관련 서적들 외에 다른 책은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문득 내 지정석에 붙어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바라봤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 말을 눈으로 읽으며 숨을 깊이 내쉬었다. 속이 오르내리자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눌렀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이 속에서 얹힐 것만 같다. 내가 앉은자리에는 공부계획표와 시험 일정, 다짐을 적어둔 포스트잇이 두서없이 붙어 있었다. 아슬하게 붙어 있는 계획과 목표를 적은 종이는 허술하고 힘이 없었다. 조금 센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에 달강 떨어져 바닥으로 하강할 나약한 의지. 쉽게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 염려되지만, 못해낼 이유도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환경과 상황에 맞춘 최선을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때로 내가 겪은 현실 안에서 타협하거나 체념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일종의 납득할 만한 합리성을 원한다. 내 꿈과 현실 사이의 일치하는 맥락, 꿈과 계획의 현실적 실현을 통한 일체감 있는 생활 같은 것. 난 반쯤 떨어진 포스트잇을 손으로 눌러 다시 붙였다. 내 연약한 마음을 독려하듯이. 

새로운 포스트잇을 꺼내 무언가를 내려갔다. 새롭게 쓴 메모를 책상 가운데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지짐질하듯 붙였다. 힘주어 글자를 다시 눈으로 읽었다. 


[끝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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