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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아무도 없는 밤에만 나타나는 손님

비가 내린다는 사실은 알아차린 건 새벽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이나 변덕스러운 날씨는 미리 알아차릴 만큼 중요한 일이 못되었다.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을 때 형광 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시침은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작업한 삽화의 일부를 수정하고 잠든 지 삼십 분이 지난 뒤였다. 메일을 전송해 두고 잠든 뒤 오후 나절에 일어날 계획이었다. 그때쯤 회신 온 메일을 확인한 뒤에는 비슷한 수정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마감 기한에 맞춰 작업 물을 넘기는 것보다 까다로운 건 수정 과정이었다. 출판사는 본래 요구한 시안과 다르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수정 요청을 했다. 녹이 슬어 제대로 조여지지 않는 나사가 헛돌아가듯 그들의 요구 사항을 간파하지 못한 상태로 무의미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수순 같은 거였다. 마냥 기뻐서 환희에 차 있는 캐릭터의 표정에 미묘한 씁쓸함이 감도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거나, 노골적으로 꾸민 티가 나지 않게 자연스러운 세련미가 돋보이는 컬러로 바꾸면 좋겠다는 피드백에 따라 여러 작업을 요구받았다. 대개는 “작가님 대략 그런 느낌 아시죠?”라고 물으며 말끝을 흐렸고 난 다시 해보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더 질문을 이어가더라도 그들 조차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과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난 고용된 노동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피드백을 수용하고 있다는 시늉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대부분은 여러 수정한 시안들을 차치고, 처음 작업한 결과물이 더 좋다는 식의 힘 빠지는 결론으로 끝맺었다. 직장인이 시간을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면 프리랜서는 의뢰자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들인 시간과 정성에 상관없이 무기한으로 일이 연장된다는 면에서 불합리한 면이 있었다. 설명하기 어렵거나 정의되지 않는 모호한 부분을 군말 없이 알아서 파악하여 수정해 주길 바라는 요구는, 토라져서 침묵하는 애인의 상한 마음을 달래는 일보다 더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잠들기 직전 굽은 어깨를 바로 펴며 기지개를 킬 때 창을 한번 바라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도랑처럼 어두운 새벽의 기운이 창밖을 메우고 있었다. 이따금 도로를 내달리는 차의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마저도 사라지고 조용했다. 어두운 장막을 펼쳐둔 것처럼 새카만 방 안에서 침묵을 베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두 팔을 뻗자 머리맡에 있던 쿠션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는 매듭이 손에 닿았다. 혼자 있는 게 적막할 땐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따금 지쳐서 기력이 없을 때 다가와주는 인기척이 그리운 법이니까. 과도한 관심이나 알은척은 성가시더라도 동떨어져 홀로 표류되어 있는 기분을 달래주는 최소한의 온기는 필요했다. 눈을 감고 따뜻하게 만질 수 있는 부드러운 몸을, 엉킴 없이 매끈한 고양이의 털을 상상했다. 여인의 유려한 곡선이나 가슴을 떠올리며 발기된 물건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보다는 그쪽이 편안할 것 같았다. 서른 중반의 나이를 살아간다는 건 성욕에도 열정적인 구미가 당기지 않는 편이 자연스러운 변화인 건지 이별에 따른 심리적 문제인지는 진단받지 않아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육체의 노화를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확인할 땐 씁쓸했다. 귀여운 강아지가 잠든 내 얼굴을 핥거나 꼬리를 틀고 잠들어있는 고양이의 울음을 연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내가 사는 빌라의 주인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신경질적인 중년의 여성이었다. 초로의 여성이 계약서 도장에 서명을 하며 코를 킁킁거릴 때, 고양이가 안 된다면 강아지는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애인은 내가 사는 집에 자주 놀러 왔는데, 그녀에게 고양이가 있었다. 이삿짐을 택배 상자에 포장할 때 꼬리를 흔들며 주변을 배회하던 얼룩이의 털이 엉겨 붙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주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개사에게 물었다. ‘혹시 뭐 왔다 갔어요? 들어오자마자 코가 간질간질한데요.’ 주인은 월세를 지불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라면 고양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기체를 꺼리는 것 같았다. 그 뒤로도 혹시나 집에 놀러 올 여자 친구에게 옮겨 붙을 고양이 털로 인하여 곤란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급스러운 염려였다. 얼마 뒤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고양이 털이 내 옷이나 가방에 엉겨 붙는 일은 없었다. 그 뒤로 우연히 마주친 주인은 코를 킁킁거리거나 재채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시계를 보며 몸을 일으킨 건 노크 소리 때문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새삼 둘러본 방안은 적막한 어둠에 침잠하여 있었다. 전원을 켜 둔 모니터 화면만 짐승의 눈처럼 나를 응시했다. 출입문으로 다가가자 노크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질문에 돌아온 건 침묵이었다. 바람 소리인가, 선잠에 들었을 땐 작은 기척에도 의식이 깨어나는 법이니 작은 소음을 잘못 들었던 것 같다. 이 새벽에 누군가 문을 두드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지친 몸을 뉘이거나 뒤척이며 깊은 잠에 빠져들 만큼 고요한 새벽이었다.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침대로 돌아왔다. 품에 안고 있던 탓에 얇은 구김이 진 쿠션을 손으로 만졌다. 어쩌면 여자 친구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 달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백화점의 의류 코너에서 일하는 그녀는 내 미래가 흑색이라고 말했다. 한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이 공간과 내가 잘 어울린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우린 가망이 없어. 너한테 미래가 보이지 않아.”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일구고 싶어 했다. 난 특별히 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녀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흥분하거나 설레는 표정으로 이야기할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의 달뜬 꿈에 가담하거나 성취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고 바랐다. 물론 그건 막연한 바람이었을 뿐 실행된 적이 없었고, 그럴 만한 의지도 없었다. 내게 미래가 없다는 말을 남긴 뒤 연인은 내 몸을 빠져나갔다. 그 말에 아무런 이의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환기되지 않은 이 집에서 우리가 나눈 건 섹스밖에 없었다. 삭막한 집안 분위기를 바꾸면 좋겠다며 여자 친구가 선물해 준 올리브 나무는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어도 계속해서 노랗게 잎이 변해갔고 시름시름 앓다 뿌리가 썩어 죽었다. 해가 들지 않은 곳이라 그런가 봐, 의기소침한 얼굴로 그녀는 생명력을 잃은 올리브 잎사귀를 매만지며 말했다. 토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식물의 뿌리가 부제한 화분만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어떤 존재도 생육할 수 없는 황폐한 나의 공간엔 어떠한 생명도 들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자 친구도, 그녀가 선물한 올리브 나무도 모두 떠나고 없었다. 난 쿠션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나를 떠난 이유가 타당하다는 확신이 들수록 마음이 공허해서 괴로운 성찰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럴수록 정신은 또렷해졌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똑똑.


이번엔 그 소리가 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렸다. 난 소리에 감각을 곧추세우며 창가로 발을 내디뎠다. 분명 노크 소리는 문이 아닌 창문에서 들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죽은- 또는 죽어가는 과정이 진행 중인- 올리브 나무가 있었다. 다시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분명 내가 들은 건, 창에서 들리는지 문에서 들렸는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작지만 분명한 노크 소리였다. 문을 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분명 누군가 있었다. 이십 대 초반, 많아도 이십 대 중 후반으로 보였다. 귀 밑까지 오는 짧은 단발에 눈이 가늘고 긴 여자였다.


“다행이네요. 아직 깨어 있으셨군요.”


여자는 다짜고짜 고양이를 봤느냐고 물었다. 


“고양이를 잃어버렸거든요.” 

“네?” 


난데없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이곳에서는 반려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것으로 있는데요.’라고 말했다. 


“여긴 무언가를 키울 수 없는 곳인 건 알아요. 알면서도 키운 건 주인의 허락이 없더라도 그 녀석을 책임질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기 때문이었어요.” 

“도둑고양이였나요?” 


내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셈이죠.’라고 답했다. 그런 거면 그런 거고, 아닌 거면 아닌 거지 그런 셈이라는 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새벽에 찾아온 손님의 말은 엉뚱하고 두서없어서, 선잠 속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혹시 여기서 계속 저희 집 문을 노크를 했나요?” 


두 번째 질문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바로 앞전에 들렸던 노크는 누구였을까, 잠시 생각했다. 혹시나 여자 친구일까.


“그럼 오가다 누군가 보진 못했나요?”


옅은 기대감을 느끼며 묻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 뒤에도 여자는 잠자코 나를 바라보며 대화의 다음을 내가 이어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자신의 고양이의 행방에 대한 고민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한 듯 보였다. 난 일면도 없는 이웃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려 애쓰며 궁금하지 않은데도 물었다.


“잃어버린 고양이는 어떤가요?”

“강아지 같은 면이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진짜 강아지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여자의 말은 들을수록 엉뚱한 구석이 다분했다. 난 비꼬는 투로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면 강아지 아닌가요? 야옹이라는 울음 대신 멍멍이라고 짖는?’이라고 물었지만 여자는 진지하게 대꾸했다. 


“아뇨, 강아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분명 고양이예요.” 


여자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미트는 여느 고양이들과 달리 발톱을 깎을 때도 얌전히 있고, 드라이기 소리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난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듯 여자는 웃음을 띠고 말했다. 


“입주한 지 6개월 됐는데 그간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미트가 고양이답지 않기 때문이에요.” 

“미트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미트볼 파스타예요. 다진 쇠고기를 사 갖고 오던 날 녀석을 만났는데, 수풀 사이를 헤집고 있었어요. 동물 관련 프로에서 고양이가 쇠고기를 섭취하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미트볼을 만들기 위해 사온 고기를 나눠줬어요.” 여자는 고양이를 처음 만난 장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없던가요?” 

“흔적도 없었어요. 그때 그 장소에서 발견했을 때 미트는 구내염에 걸린 상태였어요.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침이 흐르고, 생기를 잃은 털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버석했어요. 그때처럼 어딘가에서 아픈 상태로 돌아다닐까 봐 걱정돼요. 하필 발정기가 시작되던 때라 자주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어요. 울음소리가 잦아지다 보니 산책을 종종 시켜줬는데 잠시 한 눈 팔던 사이에 사라졌지 뭐예요.”


난 새벽에 가끔 들렸던 창문을 두드린 노크 소리를 떠올리며 물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간혹 그런 소리를 들었던 날이 있었다.


“혹시 그 고양이가 문이나 벽을 긁는 습관 같은 게 있진 않나요?”


 강아지라고 착각할 법한 고양이라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빌라의 삼층까지 탄력 있는 꼬리를 늘려 창을 두드렸을지 모른다는 상식을 뛰어넘는 괴상한 상상을 해버렸다. 어째서 난 이런 상상에 관련한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을까? 여자는 무언가를 신중하게 떠올리는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없지만, 누군가의 인기척에 예민해요. 드라이기, 청소기 소리에는 꿈쩍하지 않아도 노크 소리에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해요. 특히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은 거요.”


나는 맥없는 질문에 꽤 진지하게 답변해 준 여자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트가 사라지던 날에도 한차례 노크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가 몇 차례 지속되어서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서 산책을 나가려고 했는데 그 틈에 열린 문틈으로 미트가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게 언제인가요?”

“미트가 사라졌던 한 달 전에 한 번, 그리고 어제.”


내가 들은 소리가 환청이나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문이 아니었어요.”

“창문.”


여자와 나는 동시에 미리 정해둔 듯 같은 대답을 했다. 난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간혹 문에서 들리는지 창문에서 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크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녀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자는 노크 소리를 들은 건 맞지만 그 소리의 출처를 모른다고 했다.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군요.”  

“이 건물은 방음이 잘 안 되는 곳이잖아요. 당신의 귀에 들렸다면 그건 분명 진짜일 거예요.”

“고양이가 자주 울어서 난감했던 적은 없나요?”

“발정기에 그럴 땐 실컷 울 수 있도록 새벽에 산책을 했어요.” 


이따금 빌라 근처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그게 미트의 울음이었을 것 같다고 어렴풋이 예상했다. 좋지 않은 안색으로 여자는 미트의 안위를 걱정했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더 찾아볼 만한 곳이 있나요?”


그녀는 주인 몰래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비밀을 터놓은 내게 짧은 시간에 급격한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좀처럼 대화를 끊고 돌아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옆 골목에 있는 공원이요. 호수를 중심으로 크게 형성되어 있는 공원. 그쪽에 다른 길고양이들도 있어서 가보려고요. 함께 산책을 갈 때도 그 부근을 두 세 차례 걸었어요.” 


목줄을 매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하자 기묘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설명에 따르면 미트는 강아지로 착각할 만큼 여느 고양이와 다르다고 했으니 목줄을 달고 주인과 산책하는 모습도 그리 이상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허기를 느꼈다. 공복감을 채우기 위해 컵라면을 끓여 먹고 마저 눈을 붙이고 싶었다. 대화를 이만 끝맺을 때가 됐다는 무언의 시선을 보냈으나 여자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미트는 고양이답지 않다고 했으니 집 근방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선 기다려보세요.”

“그래도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예요. 아무리 강아지처럼 보인다 해도 고양이가 강아지가 될 순 없으니까요. 같이 찾아봐주실 수 있나요?” 

“초면에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어요. 제가 일이 있어서요.”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 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더 있다간 여자의 미트 찾기 작전에 착수해야 할 것만 같았다. 돌아선 등 뒤로 여자의 음성이 목덜미를 잡았다. 


“미트를 찾으면 노크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고개를 반쯤 돌리자 확신 어린 여자의 표정이 보였다. 


“어떻게요?” 

“고양이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청각에 예민해요. 우리가 자칫 놓칠 때에도 노크 소리를 알아차리고 알려줄 거예요.” 


살짝 다문 얇은 입술이 고집스러운 인상이었다. 미트의 존재를 찾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의 의지가 만연한 표정, 난 그녀의 새벽 산책에 동행할 의지가 별로 없었지만 은연중에 따라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불이 꺼진 상가와 어두운 빌라 사이를 지나다가 수풀이 나왔다. 꼭 이런 험난한 길로 가야 하느냐고 묻자 여자는 수풀 사이에 미트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낡은 돌담을 지나 골목 어귀를 돌자 오솔길처럼 잘 다져진 흙길이 나왔다. 그곳을 걸어 내려가자 나무가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는 호수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풀숲과 나무 사이, 벤치 아래, 흙더미와 바위틈을 살피면서 걸었다. 한두 차례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여기를 걷는 게 참 좋았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자 친구는 잠이 안 오는 새벽에 예정에 없던 산책을 청하곤 했다. 집 앞에 있는 공원 걷고 오는 거 어때? 그 제안에 나른한 몸을 뒤틀며 따라나섰다. 어째서 새벽에 산책인 거야, 섹스도 아니고. 내가 물으면 여자 친구는 콧소리가 섞인 웃음을 자아내며 말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잖아, 낭만 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특히 그 호수는, 잔잔한데 깊숙해서 계속 보게 돼.” “그보다는 난 당신의 깊숙한 음부가 더 기대돼.” 내가 농밀한 농담을 해도 여자 친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여자는 고양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감정이 예민했고, 기복도 잦았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낭만이라는 것을 여자 친구는 이곳에서 발견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가슴 뛰는 무언가를 발견했더라면 내가 사는 곳을 저주하며 떠났을 리 없다. 우리의 산책은 중단되었고 난 여전히 그녀가 말했던 낭만을 알지 못한다. 나는 잠시 그녀와 걸었던 익숙한 길의 중간에 서 있었다. 얼마 동안 서서 그 시간들을 떠올리자 몹시 쓸쓸하고 슬픈 기분을 느꼈다. 앞서 걸어가던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괜찮아요?” 


여자가 물었다.


“이곳에 왔던 기억이 있어서요. 잠시 생각했어요.”

“새벽의 산책자는 미트와 나뿐만이 아니었군요.”


여자가 미소 지었다.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눈동자가 반짝였다.  


“동행하던 건 누구였어요?”

“여자 친구요.”


굽어진 나무 밑동에 깊숙한 구덩이가 있어서 살펴봤지만 짚더미와 잡초 외엔 없었다. 다시 길을 걸으며 대답했을 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같은 여자였군요.”

“무슨 뜻이에요?”

“야행성인 고양이들과 진배없는 여자일 것 같다고요. 그런 여자라면 어떤지 알 것 같아요.”


여자는 팔을 허공으로 길게 뻗어 몸을 풀었다. 난 유연한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지나친 관심을 싫어하지만 무관심은 견디지 못하는 타입.”

“그런 면이 고양이를 닮긴 했어요.” 


난 여자의 말에 수긍했다. 살짝 올라간 여자의 입 꼬리가 묘하게 전 연인의 미소와 닮았다고 느꼈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새벽 공기에 뒤섞인 수풀 향을 맡았다. 비가 그친 뒤라 습기를 머금은 속 땅의 선선한 향이 좋았다. 내가 천천히 뒤따르자 여자는 물었다. 


“지금 기분은 어때요?”

“배가 조금 고픈 것만 빼면 괜찮아요. 이따 돌아가면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어요.”

“부셔서 먹는 건 어때요? 어렸을 때 PC방에서 게임할 때 그렇게 먹었거든요. 끓여 먹는 라면과 다르게 과자처럼 먹는 것도 별미예요. 허기진 속을 채우기엔 그만한 게 없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선 호수가 잘 보이는 나무 아래의 벤치를 가리켰다. 빈자리에 앉아 여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과자 봉지를 꺼냈다.


“같이 먹어요. 라면 대신.”

“맛있네요.”


난 여자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이런 불량 식품도 적절히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돼요. 그러고 보니 미트에게도 양념이 되지 않은 라면 면발을 가끔 주곤 했어요. 까슬한 혀를 둥글게 말면서 열심히 먹을 때 얼마나 귀엽던지. 고양이 혀를 만져 본 적 있나요?”

“아뇨, 없어요.”


여자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는 등허리를 만지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앞발로 내 손을 밀어내곤 했다. 혀는커녕 등을 쓸어준 적도 많지 않았다. 


“고양이 혀는 몸에 장착한 머리빗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예요. 까끌까끌한 혀를 이용해서 털을 고르기도 하고, 생선 가시를 발라 먹기도 해요.  그 혀로 간혹 잠든 저의 발을 핥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깜짝 놀라서 깨곤 해요. 아크릴 털실로 짠 수세미로 누군가 제 솜털을 밀어낸 기분이 들어서 눈이 번뜩 떠지는 거예요.”


여자는 미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반짝였다. 여자 친구가 결혼에 대해, 앞으로 실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의 생기 있는 눈빛 같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여자 친구가 낯선 여자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무의식 속에서 나의 연인은 내가 기억하는 한 달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6개월, 1년이 지난 뒤에도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에서 바뀌지 못하고 박제되어 있겠지.  함께한 시간들 외에 다른 시간을 곁에서 지켜볼 기회를 박탈당했으므로 그 너머의 시간은 알 길이 없었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기억하는 미트의 모습은 한 달 전의 모습이었다. 떨어져 흘러온 시간만큼 미트도, 나의 전 여자 친구도 조금씩 바뀌고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시시각각 새롭게. 여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넸다.  


“피울래요?”


난 고개를 저었다.


“끊었습니다.”

“고양이 같은 여자 때문에?”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덕분에 금연한 건 좋다고 생각해요. 이젠 끝나 버렸지만.” 


여자는 담배 연기를 입으로 뿜어내며 물었다. 


“왜 헤어졌어요?” 

“글쎄요. 내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난 어깨를 가볍게 추어올렸다. 


“내가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거나 미래를 함께하기엔 가망이 없다는 판단 때문일 거예요. 벌써 헤어진 지 한 달이 다 되었어요.” 

“미트가 사라진 시점과 비슷하네요.” 


여자는 반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신발 앞코로 비벼 꺼버렸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든 여자든 미련 없이 떠나면 돌아오지 않네요.” 

“난 미트를 찾고 싶은데, 당신은요?” 


흠, 난 한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가망이 없어요.” 

“어째서요?” 

“미래가 없는 남자에겐 여자는 정착하지 않아요.”

“패배자 같은 답변이네요.” 


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깊은숨을 토해내자 여자가 담배 갑을 꺼내 건넸다. 두 번째 제안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 한 개비를 가져가 입에 물었다. 여자는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여주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답답한 속을 훑어 내려가는 자욱한 연기가 혈관 안쪽까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미트 때문에 나도 담배를 끊었어요. 간접흡연도 고양이에겐 해롭다고 해서. 그런데, 그만 다시 피우는 걸 보면 의지박약이에요.” 


여자는 말했다. 


“당신을 유혹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요.” 


난 여자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피우던 담배를 신발로 비벼 꺼버렸다. 


“실은, 어제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여자 친구를 떠올렸어요.” 


여자는 턱을 괸 상태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째서요?”

“혹시, 다시 찾아온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럴 리 없다는 건 알면서도. 그다음에는 비슷한 소리가 창문에서 들릴 땐 자각했어요. 아무리 작은 빌라더라도 삼층까지 손을 뻗어 문을 두드릴 만큼 고양이 버금가는 점프력을 소유한 여자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여자는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미트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남은 새벽은 짧았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난 여자와 넓은 공원은 두세 차례 돌았다. 지칠 땐 벤치에 앉아 두서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이야기의 서두는 한 달 전 사라진 여자 친구나 고양이답지 않은 고양이에서 맴돌았다. 다른 주제로 벗어날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점차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며 희끄무레한 빛줄기가 서서히 보일 때, 아침이 밝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미트의 꼬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흘러버렸다. 


“더 이상은 어렵겠네요.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해야 할까 봐요.”


여자는 말했다. 난 미트를 찾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희미한 빛이 서서히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는 아침의 광경을 지켜본 뒤에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난 여자의 말을 듣고 난 뒤로 미트라는 고양이를 떠올리면, 여자 친구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나의 미진한 상상력의 한계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작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진 연인의 얼굴이 이젠 고양이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난 지친 몸으로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회신 오게 될 메일을 확인한 뒤 다시 지루한 작업에 착수해야 했다. 잠은 달아나 버렸지만, 모든 기력이 몸 어딘가의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똑똑. 눈을 감고 무채색의 어둠 가운데에 라면 면발을 씹고 있는 고양이를, 아니 고양이의 형상을 한 여자 친구가 바로 보였다.  기괴한 상상을 지우고 현실감 있게 그녀의 모습을 그리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 친구는 무얼 하고 있을까,  여전히 새벽에 산책을 할까, 미트를 찾았더라면 노크 소리의 정체가 누군지 밝혀낼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들이 이어졌다. 똑똑.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곧바로 시선이 향한 건 창문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의 방향으로 청각을 곧추세웠다. 창가를 서성였지만 소리는 출입문에서 들렸다.


“누구세요?”


문을 열자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새벽이 아니라 아침에 본 여자의 얼굴은 조금 더 생기가 있어 보였다. 잠에 뒤섞인 상태라 잠시 여자가 미트를 찾았다는 소식을 알려주러 온 건 아닐까 생각했다. 


“노크 소리 말인데요.”


머뭇거리던 여자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그걸 알려주는 대가로 동행해 준 건데, 답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난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미트가 사라졌던 날도 그리고 어제도 비가 왔어요.”


난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여자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 것과 노크 소리의 상관관계가 자연스럽게 결부되는 지점이 없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침이 밝아 있었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훨씬 청명했다. 


“빗소리요. 간혹 미트는 빗물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노크 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모양이에요. 비가 올 땐 창가에서 앙칼지게 울 때가 있었어요.” 


여자의 설명대로 내가 들은 건 노크 소리가 아니었을 수 있다. 빗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던 건가, 허탈했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더는 의미 없는 질문을 이어가며 노크 소리와 전 여자 친구의 방문 가능성을 연결 지어 관계를 재고할 희망을 어설프게 그리는 일은 관두고 싶었다. 잠든 뒤에도 간혹 귓가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선잠에 들었다 일어난 늦은 오후에 비슷한 작업을 반복해서 착수했다. 여전히 답을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모호한 피드백 내용에 대응하는 건 수고스럽더라도 조금씩 바꾸어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을 끝마친 뒤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캄캄한 눈앞에서 드라이기 소리나 청소기 소리엔 꿈쩍도 않지만 노크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고양이가 유연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여자는 미트를 찾을 수 있을까. 

똑똑.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를 닮은 여자 친구가 떠올라 마음이 동요하였지만 이내 그 모습은 흐려졌다. 그런 뒤에는 여자가 잃어버린 고양이가 머릿속에서 그려졌고, 생기를 잃은 올리브 나무의 잎사귀를 떠올리기도 했다. 산란한 이미지들이 두서없이 흩어졌다 모이는 것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비가 오는 창가의 또렷한 빗소리가 생각났다. 똑똑, 똑- 똑  머릿속을 헤집는 균열음이 들렸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곧 소리는 거짓말처럼 멈출 것을 이젠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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