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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뒤늦은 작별 인사

“왜 아이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의문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건 조용한 질타였다. 난 변명할 여지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에 아이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가 보였다. 최태준. 아이의 얼굴과 이름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리워하던 아들의 사진이 맞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난 그 남자가 아이를 방치하고 잠적했다는 사실에 적의를 느끼는 한편 아들을 두고 도망친 나의 경솔을 후회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취해야 할 목적이 있을 때에만 호의적인 가면을 쓰는 박처한 남자였다. 준수한 용모와 그럴듯한 화술로 결혼 전 숱하게 지껄였던 약속은 타버린 잿더미가 됐다. 전소된 관계에서 건질 수 있었던 건 아이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망각한 사람처럼 짐을 쌌던 그날의 내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근심을 버려두고 잠깐이라도 숨이 트이는 곳으로 향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어찼었다. 눈에 들어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게 되셨다고요.”

“네.”

“어머니께서도 당황하셨겠지만, 어른들의 사정과는 별개로 아이에겐 일련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던 게 상처가 됐을 거예요. 아이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네.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요?”

“말없이 창문을 자주 봤어요. 다른 아이들이 놀 때도 어울려 놀지 않고요.”


태준이는 원래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이였는데, 내가 없는 사이 많이 변한 걸까. 내가 모르는 태준이의 시간은 어떤 일들과 감정으로 덧입혀졌는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나를 속박한다고 믿었던 환경(당시엔 그 범위에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환기되지 않은 컴컴한 집에서 도망치면 모든 시름과 괴로움에서 멀어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태준이가 없는 삶은 이유와 목적이 없었다. 애 아빠에게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연락을 취했을 때 남편 대신 연락을 받은 건 다른 사람이었다. 


"고모님이 왜... 그이는 어디 있어요? 태준이  때문에 연락했는데 통화가 안 돼서요. 남편이나 애 버리고 나갈 땐 언제고 이제서 연락한 이유는 뭐야? 암튼 그 녀석이 짐 떠넘기듯 애만 두고 가버려서 곤란해졌다고. 난들 봐줄 형편 안 되는 거 알 거 아니야. 엄마가 돼서 그러는 건 도리가 아닌 거야."


남동생이 연락되지 않아 다른 피붙이를 떠안게 된 것에 고모라는 작자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안타까워하는 뉘앙스와 고무적 시늉을 해 보였지만 그들은 생활이 궁핍하여 아이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는 제 딴에 설득력 있는 해명을 해댔다. 난 곧장 아이를 찾으러 받아 적어둔 주소지로 향했다.

 태준이가 어떻게 이곳으로 흘러오게 됐는지에 대해 모른 채 도망치듯 나왔던 일이 후회가 됐다. 제 혈육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남자와의 하룻밤 본능적인 정욕이 한 생명을 불행에 빠뜨렸다.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건 설득해 봤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결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신혼여행 이후부터 남편은 통제할 수 없는 자신만의 욕구에 취해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 그 불행의 요새에서 내 아이는 생활 정보지에 그려진 ‘구인 구직’이라는 글자와 ‘최저 시급 보장’이라는 단어로 글자를 익혔다. 난 그런 나의 아들이 가련했다. 


“아이 아빠는 방문한 적 있나요?”


난 보육원 사무실을 방문한 뒤에 제일 먼저 물었다. 


“아뇨. 태준이가 입소한 것도 고모라는 분이 데려와서 진행됐어요.”


보육원 교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간 보육원 생활에서 보였던 태준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난 몇 차례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흐린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작은 앞마당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보였다. 태준이는 어떤 눈으로 창밖을 보았을까. 나와 손을 잡고 공원을 걸으며 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 소시지에 계란말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던 내 아들. 그 아이를 두고 도망치듯 나왔던 날이 바로 어제 같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홑몸이 아닌 뒤로 아이를 버려두고 이토록 긴 외출을 한 건 처음이었다. 아니, 외출이 아니라 가출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태준이는 그날, 어린이집에서 하는 역할극에서 도맡은 배역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어 했다. 주인공은 버림받은 강아지를 키우며 친밀한 우정을 쌓는다는 내용의 연극이었다. 둘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지만 어느 날, 강아지는 사고로 죽게 된다. 두 친구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이야기라고 아이가 말했다.


“네가 맡은 역할은 뭔데.”


난 미온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주인공의 친구, 버림받은 그 강아지.”


아이의 대답이 이상하리만치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건 왜일까.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아이의 목소리는 최대치의 볼륨으로 높인 라디오 소리처럼 명확하게 들렸다. 

 역할극의 두 주인공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이 찾아왔듯 내겐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거나 이별을 암시할 만한 이야기를 꺼낼 여유가 없었다. 숨 막히고 답답한 이 공간에서 먼지 낀 선풍기의 날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음을 듣는 내 꼴이 초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푹푹 찌는 더위가 지독했다. 몇 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들이쉬었다 내쉴 때마다 무거운 공기가 순환되지 않고 기도를 꽉 막았다. 전원 버튼을 튼 게 기억나지 않는 에어컨을 가리키며 태준은 물었다. 엄마, 우리도 에어컨 틀면 안 돼? 학습지 잘 풀 테니까 에어컨 조금만 틀어줘. 태준아, 더우면 시원한 물에 세수하고 오자. 에어컨은 필터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라 작동시키면 곰팡이나 나쁜 먼지가 뿜어져 나와서 몸에 해로워. 

난 아들을 돌아보지 않은 상태로 통장과 옷가지를 챙기며 대답했다. 내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던지 태준이는 얌전히 세수를 한 뒤에 시원한 생수를 물 잔에 따라 건넸다. 


“엄마, 괜찮아? 얼굴이 하얀 게 아파 보여.”


‘아니 괜찮지 않아.’ 난 태준이의 조그만 어깨를 의지하듯 붙들고 소리치고 싶었다. 애써 모든 감정을 누르며 물을 들이켰다. 이마 언저리와 뒷목에서 진득한 땀이 흐르는데, 기도로 흐르는 차가운 냉기 때문에 기분이 이상했다. 수면 위에 떠있는 투명한 기름 막처럼 기묘하게 매치되지 않는 공허를 느꼈다. 단숨에 들이 켠 생수는 몸을 통과하여 증발했다. 끊임없이 목이 바르고, 몸이 마른 지푸라기처럼 타들어갔다. 끔찍한 더위가 이 집 안에서 새카만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는 상상을 하다 그 불꽃의 중심에서 무언가 꿈틀 움직이는 까만 점을 주시했다. 까만 점은 커지더니 커다랗고 둥근 원을 형상했다. 그 안에서 꼬물거리는 하나의 유기체가 보였다.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초음파로 찍었던 사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까만 바탕에 희미한 흰색으로 이루어진 작은 움직임. 그 믿을 수 없이 작은 존재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제 힘으로 성장해 나갔다. 자신이 정한 적절한 시기가 되었을 때 시끄러운 소리 없이 내 몸을 회로처럼 통과하여 수월하게 나왔다. 짧은 산통  끝에 얻은 아이는 잿더미에서 캐낸 것처럼 뜨거웠고  건드릴 수 없을 만치 가녀렸다. 내 안에 담겨 있던 작은 생명을 처음엔 실감하지 못했다. 임신 상태가 거짓말이었거나 선잠이 들었을 때 꾸었던 환몽으로 느껴졌다. 그때 그 작은 생명이 커서 내 안색을 살핀다는 게 경이롭고 신기했다. 부족한 엄마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잘 자라주고 있다고 여기면 없던 삶의 의지도 솟아났다. 불운한 결혼 생활의 목적과 힘은 오로지 태준에게 있었다. 그렇지만 때론 이유와 목적이 명확해도 견디기가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당시에 난 숨을 쉬지 못할 만큼 밀폐된 어딘가에 갇혀있는 곤혹스러운 괴로움을 느꼈다.   


‘벗어나야 해. 도망치고 싶어.’


난 집을 챙긴 뒤 아이에게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떠나는 일이 죄악처럼 여겨져 그 무거운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 태준이도 많이 더울 텐데 엄마 걱정해 줘서 고마워.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소시지랑 계란말이 해줄게. 내 말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챙겨둔 짐을 문 앞에 가져다 두었다. 이곳이 잠시 환승하는 정류장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저녁상을 차렸다. 아이는 좋아하는 반찬을 먹으며 계속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들은 나를 관통하여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으로 흩어졌다. 다 날아간 뒤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장은 하나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미리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어.” 


예고치 않은 강아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주인공의 대사라고 태준은 말했다. 자신의 역할이 죽는 대목을 이야기할 때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이는 어떤 표정을 할까, 나를 원망하며 울거나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쓸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심각한 고민은 아니었다. 당장 그 일들은 진지하게 와닿지 않을 만큼 숨이 벅찼다. 역할극의 결말에서 강아지가 죽었든, 테이블에 쌓인 빈 고지서에 연체료가 쌓였든 일련의 상황을 모른 척 도망치고 싶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밀린 고지서와 곳곳에 붙은 차압 딱지를 보는 것만으로 전망이 어두운 터널에 갇힌 것만큼 암울했다. 아이의 어린이집 보육료는 두 달째 밀려 있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집에 안 들어온 지는 일주일째. 난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잠만 한두 시간 자던 날이 지속됐던 때, 난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행동을 개시했다. 태준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곧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상대는 새싹 반 선생님이었다. 난 당장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면서도 확신 어린 어조로 이번 주중으로 수업료를 보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호소 어린 약속을 했다. 그 말 뒤에는 덧붙여 아이 아빠의 번호를 넘겨주었다. 태준이와 관련한 일은 보내준 번호로 안내 부탁드린다는 인사까지 해두었다. 어쩌면 나는 의식하지 않는 사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잠을 자지 않고 지새우는 새벽에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헤매며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남몰래 결심한 걸 수도 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남편은 짧으면 이삼일, 길면 일주일에서 십일 정도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모를 출처 불분명한 돈 봉투와 치킨을 들고 와서 새삼스러운 아빠 행사를 하며 즐거워했다. 또 어떤 때에는 뻔뻔한 얼굴로 급전을 요구하거나 서랍을 뒤져 푼돈이라도 꺼내 갔다. 도망친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그 남자만을 탓할 수도 없다는 지점에서 우린 모두 부모 자격이 없었다. 난 내가 불땔감 같은 엄마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태준을 볼 면목이 서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 씩씩하게 나고 자란 나의 핏덩이를 내가 감히 버렸다.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주지 않고, 짐스러운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식사를 차려주며 안심시켜 준 뒤 무책임하게 사라졌다. 이별의 이유를 몰랐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빈자리가 태준이에게는 사고와 같은 게 아닐까. 문득 난 태준이가 읽은 역할극의 대사를 곱씹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내 앞에서 한참 동안 교사는 여러 설명을 이어갔고, 내게 아이를 데려가서 키울 의지와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과 살 곳을 마련했으므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답했다. 보육 교사는 태준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하며 일어섰다.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었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곱씹어 떠올렸다. 기약 없는 이별, 작별 인사 없는 작별. 무책임하게 모른 척 도망쳤던 시간 속에서 아이는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하염없는 기다림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제서 널 다시 찾으러 왔다는 한 마디로는 아이를 이해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난 아이가 참여한 연극에 대해,아들이 읊는 대사에 대응하여 다른 대사를 함께 읽어주었어야 했다. 태준이는 그 후에 유치원에서 역할극을 무사히 해냈을까.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챙기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던 일에 대해 섭섭할까. 갑작스럽게 자고 일어났을 때 내가 사라진 걸 알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장 내 삶을 연명하는 끈이 되어주는 건 아이였는데, 그걸 잃은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이유 없이 버려지는 건 무방비한 상태로 벌어지는 사고 같은 것이다. 이별에 대한 해명조차 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무책임한 엄마인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다시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릴 때 바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 나의 아들은 몇 개월 사이에 키가 조금 자란 듯했고, 눈가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나를 보는 태준의 시선이 흔들렸다. 붉어진 눈가가 찡그려지며 입이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이별처럼 갑작스럽게 도래한 만남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이는 주춤 뒤로 물러 서며 바로 다가오지 못했다. 자신이 보고 선 대상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일까 봐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별의 사고 후유증이었다. 이유 없는 이별은 내가 아이의 마음에 남긴 분명한 상처였고 나는 부모의 자격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엄마가 미안해.”


난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허리를 굽혔다. 조심스레 두 팔을 허공에 뻗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안겼다. 아이는 처음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왔을 때와 같이 복받친 울음을 터뜨리며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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