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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깻잎 김치에 벌레가 있을 확률

상에 깻잎김치가 오르면 손이 가지 않았다. 아빠는 다른 젓가락의 도움 없이도 붙은 깻잎을 떼어 한 장씩 떼어 고봉밥에 얹어 먹었다. 밥그릇까지 박박 긁어먹는 아빠의 식사 광경은 실로 요란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면 절로 배가 부른 느낌이 들어 젓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식사 준비를 끝내고, 아빠의 그릇에 있던 밥이 반절로 줄자, 엄마의 조용한 식사가 시작됐다. 엄마는 식은 밥에 보리차를 말아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더운밥을 먹으라고 말해도 부엌 냄새를 맡으며 요리한 뒤에는 입맛이 없다고 했다. 엄마 또한 아빠와 마주 보면 입맛이 달아나는 게 아닐까. 좀처럼 밑반찬으로 향하지 않는 엄마의 깨끗한 젓가락은 상 위에서 들어 올려진 적이 없었다. 손바닥보다 훨씬 적은 양의 밥이 물에 불었을 뿐 몇 숟가락 되지 않았다. 서너 숟가락 만에 바닥난 엄마의 짧은 식사는 아빠와 얼추 비슷하게 끝났다. 아빠는 줄어들지 않는 내 밥그릇을 보더니 능숙하게 떼어낸 깻잎 김치 한 장을 얹어주었다.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막무가내의 호의였지만 말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부터 아빠를 집에서 본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아빠가 기대어 TV를 보는 곳의 벽지는 누렇게 바랬지만 그곳에 앉아 리모컨을 놀리거나 민소매 차림으로 발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은 몇 번 보지 못한 풍경이다. 아빠가 오는 날에는 대면하기 껄끄러운 손님의 방문처럼 여겨져 불편했다.  우리 모녀는 이방인처럼 그를 대했지만. 아빠는 이곳을 자신의 안락한 아지트로 생각하며 꽤나 편안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활개 치며 제 손바닥 안처럼 온 집안을 널브러뜨리거나 밥을 먹고 손가락 한번 움직일 의지가 전무했다. 아빠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하루 건너 얼굴을 못 보는 일이 허다해서 집에 함께 있는 게 어색했다. 그가 무얼 하다 돌아오는지, 어디서 자고 오는 것인지 엄마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대해 아는 일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언짢은 짐 더미를 떠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입에 올리는 게 무용하다는 걸 알면 침묵하는 일이 많아진다. 감당할 수 없거나 알아봤자 손해인 부분은 덮어두고 모른척한다. 그건 지혜인지 회피인지 잘 모르겠지만 생존 방식 중 하나인 것 같긴 했다.      

아빠의 방문은 불시에 검문하거나 단골 식당에 밥을 얻어먹으러 오듯 거리낌이 없었다. 엄마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아빠는 주문을 하듯 간결하게 “배고픈데 밥이나 먹지.”라고 말했다. 식사 때든 아니든 그는 허기지면 자신의 배꼽시계에 맞춰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때론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며 나가 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엄마는 나의 은밀한 감정을 읽고 한 차례 고개를 젓거나 “식사 준비 좀 도와줘, 네 아빠 진지 드실 수 있도록.”이라는 말을 대신했다. 엄마는 참 비위도 좋아,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라면 죄책감이나 미안한 기색을 전혀 띄지 않는 남편의 외도와 가장의 의무를 상실한 무능력한 태도에 진력이 나서 도망치거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내가 아빠의 옷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입에 올리면 엄마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네 아빠 앞에서 그런 말은 조심해, 난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뭐라 말 하든 난 상관없어. 엄마가 계속 받아주니까 뻔뻔한 얼굴로 오는 거야. 분개하거나 억울한 기색도 전혀 없는 엄마를 보며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곤 했다. 억색하지도 않으냐고 물어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울거나 아빠를 원망하며 험담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고 말해도 엄마는 잠자코 깻잎을 한 장 한 장 씻거나 곁들일 양념장을 두둑하게 만들었다. 난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잠자코 엄마가 건네 오는 반찬과 국이 담긴 그릇을 아빠의 자리에 놓았다. 상 위에 그릇을 놓을 때는 일부러 숨을 참았다. 아빠의 몸에서 요란스러운 향수 나 인위적인 화장품 냄새가 풍겼고 그 냄새는 거북스러웠다.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온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는 일은 어떤 기분인지 헤아려보려 해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애인이 새롭게 바뀔 때면 아빠의 옷에서 풍기는 냄새는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어떤 냄새든 숨이 막힐 정도로 역한 향인 건 비슷했다. 아빠의 여인들은 제대로 된 상차림을 차려주지 않는 듯했다. 요리 솜씨보다는 화장술에 익숙한 여자들만 만나다 보니 엄마의 음식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오는 게 아닐까. 손맛 좋은 반찬이 생각나서 찾아온다는 것 말고는 달리 그가 이미 떠난 집을 찾아오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잠자코 아빠의 식사를 차려주는 엄마의 태도에도 의문이나 원망, 분노 같은 건 읽히지 않았다. 난 그런 엄마를 자극하거나 동요시키기 위해 아빠의 겉옷에 붙어있는 긴 머리카락을 들이민 적도 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반응하지 않거나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네 머리카락이겠지. 아니라고. 난 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짧아. 엄마는 아빠 여자 있는 거 모르지 않잖아. 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망할 깻잎 김치를 만드는 거야? 자존심도 없는 거냐고 책망하듯 쏘아붙여도 엄마는 잠자코 깻잎을 씻었다. 난 그럴수록 아빠를, 아빠가 좋아하는 깻잎 김치를 기피하며 손도 대지 않았다. 깻잎 특유의 과시적이고 노골적인 향은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빠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충실하게 밥을 먹었다. 자신의 전용 식당이라고 된다고 착각하는 건가 싶어 아빠의 식사를 보는 일이 불쾌했다. 한 집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 우리가 사용하는 식기를 같이 쓰도록 허락하는 일, 아니 그 행동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사실에 의심 없는 아빠의 태연함이 싫었지만 엄마는 나와 달랐다. 매번 “그래도 네 아빠야.”라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당장 아빠를 이 집에서 쫓아내거나 보기 싫은 깻잎 김치 따위를 더는 만들지 못하도록 할만한 작전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고집스러운 침묵을 깰 만한 기발한 말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엄마의 답은 침묵이나,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야.” 따위의 말로 귀결되는 건 정해져 있는 답이었다.

 아빠는 더운 김이 풍기는 국물을 마시다 무언가 생각난 표정으로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잊고 있던 중요한 일이 떠올리듯 젓가락 끝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툭툭 쳐댔다. 그건 엄마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였다. 어설프게 반쯤 올린 손을 까딱여 점원에게 빈 접시를 건네며 반찬을 리필해 달라고 말하는 손님들의 모습과 유사한 얼굴. 아빠의 요구에 대해 엄마는 침묵한 상태로 수용했다. 양념장이 골고루 발린 깻잎 김치가 앞에 놓이자 아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방문에 대비해 깻잎 김치를 꾸준히 만들었다. 난 향이 짙고 까끌한 솜털이 가닿는 뒷면이 혀에 닿을 때의 소름 끼치는 감각이 싫었다. 꼭 저 같은 것만 좋아하네, 난 아빠가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못 견뎌 방으로 들어가거나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깻잎은 결코 내가 먹지 않는 음식이었으므로 엄마가 그 반찬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아빠 때문이었다. 깻잎 김치는 오로지 남편을 위해 만드는 아빠만의 전유물이었고 그걸 준비하는 일에 엄마는 한토시의 푸념도 늘어놓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자신의 배꼽시계가 아니라 보편적이 식사 때에 맞춰 방문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 보고 밥을 먹어야 했다. 엄마는 잊지 않고 아빠의 그릇 가까이에 깻잎 김치를 놓았다. 난 먹는 둥 마는 둥 빈 젓가락질만 허공에서 몇 차례 하는 척하다가 밥알을 한 두 알 입으로 가져가 씹었다. 난 아빠의 젓가락이 가닿은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애초에 그와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은 여학생들의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교복 사이로 비치는 브래지어 끈을 대놓고 대화 소재로 삼는 수학 교사를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만큼이나 고역이었다. 스승이 제자를 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먼 음흉한 시선은 피하고 말도 섞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요즘 공부는 어떠냐는 하릴없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치마 사이로 드러난 다리를 훔쳐보거나 팔꿈치를 스치는 노골적인 접촉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곤란하고 불쾌한 자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 복도에서 마주치면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러나 우리 집은 학교 복도나 운동장에 비해 너무도 협소했다. 방 한 칸짜리 반 지하 집은 도망가거나 몸을 숨길 곳이 없어 곤란했다. 힐끔 아빠를 보던 내 표정이 적나라한 고통의 흔적을 본 듯 혐오감으로 일그러졌다.


“입맛이 없는 거냐.”


아빠는 나를 보며 물었다.


“먹고 있어요.”

“공부 잘하려면 먹는 것도 제대로 먹어야 영양분이 흡수된다.”


답지 않게 자식을 챙기는 아버지 흉내를 내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뱉었다. 본인이 가져온 깻잎으로 만든 무침이라 더 맛있다는 듯 연신 쩝쩝대며 먹어댔다.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거의 손댄 흔적이 없는 새 밥 위에 깻잎을 얹어주었다. 양념장이 흰 밥알에 묻자 내 얼굴은 굳어졌다. 


“저 깻잎 안 먹어요.”

“먹어봐.”


아빠는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은 듯 자기 할 말만 하며 밥 숟가락을 비워냈다.


“안 먹는다고요.”

“혹시 벌레 있을까 봐 그런 거면 걱정 마. 네 엄마가 어지간히 깨끗하게 안 씻었을까. 글고 내가 깨끗하고 싱싱한 놈들로 골라서 사 온 거야.”


아빠는 양념장이 잘 발린 깻잎을 연거푸 두 장 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보란 듯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알면서 권하는 건 또 뭔데요. 안 먹는다고요.”


내 말에 아빠의 젓가락질이 주춤거렸다. 서늘하고 낮은 음성에는 아빠에 대한 환멸감이나 혐오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 노골적인 시선의 의미를 차라리 알아주기를 바랐다. 


“벌레가 어디 있는데, 어디.”


아빠는 눈썹을 모로 모으며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을 크게 치켜뜨며 과장되게 말했다. 난 말이 없었고, 아빠는 능숙한 젓가락 솜씨로 깻잎을 종이 넘기듯 까뒤집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 깻잎들은 간혹 그 사이에 보호색을 띤 벌레들이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붙어있다 밥상 위에서 뒤늦게 발견될 때가 있었다. 아빠는 그런 이유로 내가 깻잎을 안 먹는다고 이유는 그 한 가지만은 아니다. “도대체 벌레가 어디 있다고 그런 걸로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리느냐며 투덜거리던 아빠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양념이 비교적 덜 묻은 깻잎 표면에 작은 애벌레가 죽어 있었다.


“아니, 왜 이게 여기에. 당신 제대로 씻은 거 맞아?”


아빠는 잠자코 있던 엄마에게 고개를 홱 돌리고 눈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엄마는 씻었다고 대답했고,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해대던 아빠는 반씩 접혀 있는 깻잎김치를 젓가락으로 홱 뒤집어 죽은 벌레를 잎으로 덮어버렸다. 엄마는 새로 만들겠다며 깻잎이 담긴 종지를 가져가려 했다. 자신이 손수 사온 깻잎에 벌레가 없다고 장담했던 게 민망한지 아빠는 오히려 큰소리를 냈다. 됐고, 내려놔. 뭔 손톱보다 작은 벌레 하나로 성화인지. 나참. 아빠는 엄마가 가져간 종지를 손으로 다시 가져가려 팔을 뻗었다. 그 바람에 아빠의 손등이 그릇을 쳤고, 표면이 미끄러운 종지가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하강했다. 유리가 깨지고, 철퍼덕하는 소리와 동시에 깻잎의 양념이 색 바랜 벽지와 바닥에 작은 점을 남겼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반찬이면 혼자 드세요. 전 먹고 싶지 않아요.”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난 식은 밥을 덮고 있는 깻잎 이불과 바닥에 떨어진 유리 사이로 덩어리 진 깻잎 더미를 관망하듯 바라봤다. 


“이게 어디다 대고. 인마, 벌레 있는 게 대수야?” 


아빠는 그 얇은 깻잎 사이에 벌레가 들어간 것까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냈다. 벌레가 없다고 큰소릴 치던  태도가 돌변한다. 그만큼 싱싱한 채소이니 벌레도 있는 거라며 계집애가 쓸데없이 입맛만 주체스럽다며 혀를 차 댔다. 아빠는 거의 다 먹은 그릇을 숟가락으로 툭툭 쳐대며 눈을 모로 뜨고 삿대질을 했다. 난 지극히 타당한 근거를 발견한 것에 안도하며 당당하게 젓가락을 놓았다. 이 자리에서 벗어날 충분한 명분이 생긴 느낌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빠의 큰소리가 나를 비껴가 엄마에게 향했다.


“밥상머리에서 재수 없게 깨작거릴 거면 먹지를 말든가. 자네가 오냐오냐하고 받아줘서 자가 저렇게 식습관이 엉망인 거 아니야?”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깨진 그릇의 잔해를 맨손으로 집어 반대편 손에 얹어 정리하며 말했다. 방에 들어가 있어. 난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쾅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얇은 판자를 덧대 만든 문을 통과한 아빠의 화기 어린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런 뭣 같은 상황은 어이가 없어서. 밥상머리에서 재수 없게."


아빠는 저 혼자 목소리를 높이며 그 작은 벌레 따위 때문에 반찬 투정을 하는 내가 버릇없다고 날뛰었고 엄마의 교육에 문제가 있으니 애가 저 모양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난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음 같은 소리를 머릿속에서 의식적으로 밀어냈다. 그럴수록 쩝쩝거리며 밥 숟가락을 밀어 넣는 아빠의 커다란 입과 잇새 사이로 보이는 밥과 밥 찬이 산산이 뭉개지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깻잎과 몇 번째 잎인지 알 수 없는 곳 사이에 양념에 절여진 벌레의 시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빠는 뭐라 연신 지껄이며 엄마와 나를 비난하다 밥맛이 떨어졌다며 집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집 안이 고요해지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잔상이 흐릿해진 뒤에야 문을 열고 나왔다. 유리 잔해를 치우는 엄마 곁에 앉아 빗자루 질을 하자 엄마가 나를 말리며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다. 


“들어가 있으래도. 내가 할게.”


난 반찬을 덮어두었던 이면지를 가져가 그것으로 깨진 접시 조각을 꼼꼼하게 감쌌다. 내 모습을 보던 엄마는 여기저기에 튄 양념장을 행주로 닦고, 아빠가 자랑스레 사온 싱싱한 깻잎 무침을 버렸다. 


“새 밥 차려줄게.”

“아냐. 안 먹어.”


난 고개를 저었지만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달걀과 소시지를 꺼내 붙였다. 난 손도 대지 않는 나의 밥그릇을 보며 물었다.  


“엄마도 깻잎 싫지 않아?”

“싫지. 그 사람이 싫어지면 그이와 관련된 것들도 전부 싫어져.”


엄마가 순순히 내 말에 동의하는 것에 놀라 물었다.


“근데 어째서 매번 아빠를 위해 깻잎 김치를 만드는 거야?”

“그 사람이 싫어도 네 아빠니까. 네 아빠가 어떤 행동을 했든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 

벌레도 있으면 있구나, 저 양반이 또 그러는구나, 받아들이면서 온 거지. 널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 순 없잖아. 나한테는 원수 같은 남편이더라도 허울만 좋은 아빠라도 있는 편이 나아. 넌 내 말이 이해 안 가가겠지만.”


엄마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계란물을 덧입혀 구운 소시지를 상 위에 올려두고 새 밥을 퍼주었다. 더운 김이 풍기는 밥이 내 앞에 놓였다. 난 두서없이 내가 보았던 광경을, 역한 그 냄새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난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 깻잎만 봐도 아빠 생각이 나서 못 먹겠어.  그 향과 냄새가 까끌 거리는 감촉이 싫어.  양념장을 묻혀 숙성시키더라도 선뜻 손이 안 가. 꼼꼼히 씻고 헹궜어도 잎 사이에 내가 보지 못한 벌레가 송장 째로 양념에 절여져 있을 것 같아서, 그 시체를 와드득 씹어 삼키면서 이상한 줄도 모를까 봐, 난 그게 겁이 나.”

“네가 나 닮은 게 맞는 모양이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도 좋아하지 않아, 그 향. 네가 맡았던 그 냄새.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의 옷에서 풍기던 냄새를 엄마도 분명히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모른 척한 이유가 무어냐고 묻자 엄마는 씁쓸히 웃어 보였다. 


“순응하면서 사는 거지. 네 말대로 벌레가 있는 줄 모르고 실수로 깻잎을 삼키듯 미숙할 때의 철 모르던 선택이었지만.”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돼. 차라리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난 널 낳고 정착한 뒤부터는 같게 된 의무 같은 거야.  네가 아빠가 있다는 사실, 부족하지만 겉으로는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건 중요해. 네 아빠가 밥 먹으러 올 땐 깻잎 김치가 반드시 있어야 하듯이.”

“꼭 그래야만 해?”


난 여러 차례 엄마에게 이혼을 권유했고, 이혼한 가정에 대해 큰 결함을 느끼지 않았기에 엄마의 무조건적인 침묵과 수긍이 부당한 희생으로 느껴져 절로 억울했다. 


“적어도 유지되고 있으면 무너지진 않으니까. 네가 온건해질 수 있을 때까지만.”


엄마가 처음 드러낸 속내였다. 우리 둘은 마주 보고 앉아 빈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억지로 입으로 가져갔다. 조용한 가운데 엄마의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당분간은 아빠가 오지 않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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