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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침묵에 대한 적절한 대응

거친 욕설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발길에 차이는 건 돌멩이나 깡통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무거운 신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쳤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살풍경이 눈가를 스쳤다. 신이 난 남학생들이 누가 더 지목한 대상에게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을지 내기를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야, 그 정도로 때려서 얘가 정신 차리겠냐?”

“그럼 네가 때려 보던가, 개년아.”

“미친. 조질 거면 제대로 해야지.”

“새끼야, 아프냐? 아프냐고. 아프면 살려달라고 빌어봐.”


빠르게 지나치려 했던 걸음이 느려지더니 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시야에 걸린 풍경 중 일부가 익숙했다. 알은체를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시선이 가서 돌아보았다. 골목 안쪽에는 교복을 입은 서너 명의 남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입은 교복을 보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남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이 내일부터 내가 입어야 할 복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자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후락한 동네에 있는 학교는 수준마저 하등 했다. 사람을 패고, 주먹질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작은 악마들의 공동체. 그런 존재들이 즐비한 곳에 속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담했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이런 동네에 이사 오게 됐다. 폭력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한심한 무리가 즐비한 조직에 속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문득 난 제자리에 멈춘 상태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 이사한 동네를 벗어나거나 그 학교를 가지 않을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이곳을 도망친다고 해도 자립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므로 가출 청소년이 되거나 법의 보호 따위 받을 수 없는 음지로 자연히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망가진다고 해서 떠난 엄마가 돌아올 리 없잖아. 결국 내가 환멸 하는 저런 존재들이랑 어울리는 게 미래일 텐데. 그런 비뚤어지거나 무계획적인 방법으로 호기를 부려도 우리 가족이 과거의 단란했던 때로 복귀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감자 귀를 울리던 환호와 욕설이 잦아들고 다른 장면이 흐릿하게 그려졌다.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빠와 갈등을 빚거나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이 한바탕 집 안을 헤집고 난 뒤에는 엄마는 늘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눈에 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고 침묵했다. 그 무섭도록 고요한 침묵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엄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말 수가 적어졌고, 아빠와 싸우는 대신 눈을 감거나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엄마가 바라보는 곳에는 아빠와 내가 없었다. 비껴간 시선이 다른 계획을 품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근원을 알 수 없지만 엄마가 내게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와 아빠는 모를 다른 일을 엄마 혼자 계획하고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공포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나도 엄마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처한 현실을 피할 수 없다는 맥 빠지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손과 다리에 힘이 풀려 오도가도 할 수 없었다.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낄낄 거리는 조소가 다시 귓가를 울렸다. 난 결정적인 사건의 의도치 않은 목격자가 되어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광기 어린 웃음이 나를 이 자리에 옭아매서 오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학생은 쓰러진 대상의 머리를 쥐어 억지로 고개를 쳐들게 만든 상태로 귀에 대고 말했다.


“입 찢어버리기 전에 뭐라도 지껄여보라고 씨발. 존나 입천장 들러붙었냐.”

“…….”

“내 가랑이 사이 기면서 빌빌거려 봐.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그럼 풀어줄게."


자신을 에워싼 남학생들의 광기 어린 공격이 사방에서 찔렀지만 그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협박하는 무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가 침묵했을 때와 비슷한 얼굴이다. 그 아이는 자신을 협박하는 남자애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기만하는 무리를 비껴 다른 방향을 향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상대의 가학적 폭력과 모욕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것. 그게 그 아이의 행동 방식인 것 같았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죽어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제 앞에서 기롱을 부리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줘봤자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아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조용히 꺼지라고. 그 눈빛을 읽은 건 나 밖에 없는 듯했고 발길질은 중단되지 않았다. 


“씹냐? 아가리 확 찢어버리기 전에 말하라고 씨발아.”


난 그러한 침묵의 방식을 미워했다.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되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야 할 결정적인 때에는 입을 열고 호소해야 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엄마는 내게 그런 말들 조차 하지 않고 떠나갔다. 말할 의지와 힘이 소진되었다는 건 변명이다. 살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소리쳐야 한다. 적어도 내 목소리를 좀 들어봐 달라고. 한 번은 시도했어야 한다.  


‘바보 같은 새끼.’


난 그 남자애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침묵하며 얻어터지다 무반응에 싫증을 느낀 무리가 조용히 떠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아픈 상처를 드러내 치료받으려는 의지 대신 선택한 게 겨우 침묵이라니. 엄마의 침묵이 떠오르자 그 아이를 원망하듯 쏘아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어이.”


그 아이의 침묵에 재미가 없어진 무리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뭐냐, 너 아까부터.” 

“뭘 꼴아 보고 서있는데.”


쓰러져 있던 남자아이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그의 조용한 눈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한심한 놈. 자기 혼자 빠져나올 힘도 없으면서. 그래, 네 방식대로 아프고 괴롭더라고 계속해서 입 다물고 버텨 봐. 버티고 버티다 죽을 것 같을 때까지 입 닥치고 있어. 그딴 방식으로는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으니까. 난 남자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방해할 거 아니면 조용히 네 갈 길 가라.”


그 말에 난 위축된 듯 연기하며 고개를 숙이고 무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실컷 얻어터져도 알게 뭐람. 신경을 끄려 했지만, 그 아이의 눈빛이 눈에 밟혔다. 멈추지 않고 걷던 걸음이 다시 중단됐다. 어쩌면… 이곳을 지나는 많은 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휘말리거나 타격을 입을까 봐 두려워 숨 죽인 채 저 소년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그랬듯. 무리의 날카로운 경고에 몸을 사리고 타인의 고통을 눈감는 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 아이는 침묵하고 사람들이 뒤돌아 제 갈길 가는 일을 겪으면서 체념하게 된 건 아닐까. 말해 봤자 공허하게 흩어질 게 뻔한 절규를 침음 하고, 입을 닫는 것을 택한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소리치고 애원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런 절망적인 일들에 계속 노출되었다면 조용히 시간이 가는 걸 견디는 편이 낫다고 체념한 걸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엄마도 처음부터 입을 다물고 눈을 감은 건 아니었다. 침묵하기 훨씬 전 과거에는 격앙된 음성으로 소리치거나 아빠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엄마의 침묵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때의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엄마는 사업에 실패하고 술이나 도박에 빠진 아빠에게 애원하듯 빌었다. 제발 우리를 봐서라도 마음 잡고 재기해 보자고 흐느껴 울던 신음이 이제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그때 난 물었어야 했다. 엄마가 고요히 입을 닫고 한없이 창만 바라볼 때, 요즘은 왜 아빠와 싸우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난 엄마가 어떤 대답을 할지 두려워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시험에 치여 학업에 전념하는 것에도 바빴다. 나에겐 두 사람이 싸우지 않는 편이 덜 피곤했고, 아빠가 집을 비우는 편이 집안이 고요했으므로 훨씬 나았다. 엄마의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 침묵이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며 모른 척 넘겨 버린 일들이 쌓이면서 엄마의 말 수가 줄어들었던 것 같다. 내가 유일하게 엄마에게 했던 말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두 사람 문제에 제발 날 엮지 마. 이혼하든 말든, 난 내 학비를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사람한테 갈 거니까. 난 특목고에 무사히 진학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 인생 계획은 완벽한데, 그것을 뒷받침해 줄 가정 형편이 되지 않는 건 늘 나의 걸림돌이자 성가신 콤플렉스였다. 당장의 계획은 특목고에 무사히 진학 후 의대에 가서 수련하여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일련의 완벽한 계획에 엄마나 아빠가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경고 어린 부탁만 해댔다.

‘침묵할 만했네. 가족 중 누구도 엄마 얘기를 듣지 않았어.’ 

난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마음 한 구석이 허물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음 한 귀퉁이의 봉합이 풀어지면서 뜨겁고, 아프고, 시린 감정들이 흘러넘쳤다. 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플 텐데. 눈 한번 꿈쩍 하지 않고.

희미하지만 여전히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본래의 흐름대로 쓰러진 남자아이를 일으켜 때려눕혔다. 소년은 몸을 둥글게 말고 여기저기 차였다. 공차기하듯 아이들은 그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골목을 지나쳐 무리의 희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 깡패들이 한 학생을 때리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요.”


난 침착하게 구체적인 장소를 말해주었다. 골목 안쪽에 등을 기대고 경찰차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경찰차 소리에 놀란 남학생들은 방금까지 재미있게 갖고 놀던 찰흙을 집어던지듯 피투성이가 된 남자아이를 두고 도망쳤다. 골목을 지나쳐 뛰어가던 무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씨발, 너냐? 신고한 미친 개년이?”


난 그 말에 아무 미동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수긍하는 침묵이었다. 그걸 알면 너희를 잡으러 온 경찰에게서 열심히 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시선이었다.


“너, 담에 보자.”


난 눈짓으로 지금 뒤에서 쫓아오는 경찰을 가리켰다. 무리를 잡으러 경찰들이 뒤따랐고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잦아들었다. 난 뒤돌아 지나친 그 골목으로 걸어갔다. 한쪽에 그 아이의 가방이 팽개쳐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난 말없이 바닥에 있던 가방을 들고 다가갔다. 난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나의 빈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내가 신고했어.”


그 말에 남자아이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지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찢어진 입가를 움직이자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생경했다. 아파할 줄도 아는 녀석이 맞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그 정도 상처에도 아픈 녀석이 어떻게 조용히 참았어?”


대답 대신 남자아이는 피가 엉겨 붙은 손으로 내 손을 지탱하고 일어섰다. 넘어졌다 일어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교복에 묻은 먼지와 흙을 털어냈다. 힐끔 그의 상의에 새겨진 이름을 봤다. 차지환.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날 도와줬어?”

“비겁해지기 싫었으니까.”

“정의 수호 같은 거에 의미 두고 있다면 그만두는 게 좋아. 괜한 일에 휘말려서 너만 다쳐.”

“걱정해 주는 거야?”


난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냥 조용히 침묵하는 편이 나아.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리거나 오해받지 않으려면.”

“아니.”


난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반응이 강경한 것에 놀랐던지 지환은 멈칫하며 나를 보았다. 난 소년을 보며 분명하게 말했다. 


“저런 녀석들 말에 빌빌 거리며 대응하는 것도 별로지만, 네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무기력도 좋은 방식은 아니야. 제발 도와달라고, 여기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말해야 알아. 네 목소리를 내는 건 그래서 중요해.”

난 그 말을 하며 앞서 걸어갔다. 지환은 나와 걸음을 맞췄다.

“처음이야. 누군가 그 상황에서 도와준 건.”


내가 생각한 대로 그를 나서서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의 체념이, 고요한 침묵의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처음이야. 침묵에 화답한 건.”


난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마도 침묵에 적절한 화답이 무엇인지 일찍이 알았다면 난 엄마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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