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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남편의 일기장


남편의 일기장을 본 건 우연이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겨봤으니 과실이 아니라 고의에 가까웠다. 주말 저녁 여느 때처럼 책을 읽던 남편은 어떤 연락을 받고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느냐고 묻자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모호한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마음이 조급한 것과 달리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가 일시적으로 마비됐던지 남편은 서재와 거실을 왔다 갔다 움직이며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무슨 일인데?” 내 말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네다섯 번쯤 반복하여 물었을 때 남편은 내 목소리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소음으로 들렸던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급하니까 다음에 말하자.” 남편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가버렸다. 어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지만,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급하게 나간 남편의 서재 문이 반쯤 열려 있다. 난 그 안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갔다. 남편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에 대한 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급스러운 예감이 들었던 건 왜일까. 그때의 난 어쩐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남편의 손에 어김없이 쥐어져 있던 갈색 노트를 떠올렸다. 


 남편이 나간 시간은 저녁 아홉 시였다. 이 시간대에 우리는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누가 먼저 제안하지 않더라도 이루어지는 우리 부부만의 습관이었다. 그가 먼저 개의 목줄을 매거나 분리수거할 것들을 분류하고 있으면 나갈 채비를 했다. 자주 듣는 카세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행동이었다.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킨 뒤에는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서재에서 책을 읽었고, 난 거실에서 TV를 본다. 난 볼륨 소리를 작게 낮추어 둔 채 건조된 빨래를 개키고 있었다. 더운 여름에도 문을 닫아둔 서재는 환기되지 않은 공기가 무겁게 들어차 있었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그건 남편의 재킷이나 셔츠에서도 맡을 수 있는 익숙한 향이었다. 한낮의 반짝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빼면 대부분 어둠에 잠겨 있는 서재 안은 출입이 제한된 금지 구역처럼 느껴져 선뜻 들어가기 꺼려졌다. 남편은 집 청소를 할 때에도 서재만큼은 자신이 직접 정돈하겠다고 말했다. 책을 훔쳐가거나 손상시킬 일은 결코 없을 테니 잠시라도 환기하라는 나의 성화에 남편은 오랜만에 방문을 열어 두었다. 


 난 거실에 있을 때에도 남편이 있는 서재로 귀를 기울였다. 책을 넘기거나 헛기침하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면 안심했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마음을 감싸는 얇은 막과 같은 미약한 안도감을 주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잘 시간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로 돌아왔다. 남편의 일상을 중요도에 따라 나눠 정리한다면 난 하위에 위치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남편의 삶에서 나는 한참이나 뒤로 밀려 있었다. 나를 밀어내고 그이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범위-영역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 답을 남편이 자주 갖고 다니는 노트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본능적으로 발동한 직감이었다. 근거가 될 만한 일이나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순수한 예감 같은 것. 그 기묘한 감각은 들어맞을 때가 많다. 때로 내가 가진 비어있다는 느낌은 허허벌판이나 빈집에 홀로 놓여났을 때의 공포와 비슷했지만 남편에게 터놓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말로 표현하기 모호한 외로움이나 공허를 그이에게 설명하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단어나 표현이 부족했다. 책을 자주 읽지 않은 탓에 미천한 어휘력이나 표현력의 한계 때문일까. 강렬한 영감이나 악상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없다 해도 어떤 것이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을 명료하게 정리하거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안에서 엉겨 붙어 만들어진 앙금을 명확하게 분석할 수 없었지만, 공복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뒤척이듯이 충분한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찾기 전까지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혼자 감내해야 한다. 구체적 언어로 내가 느낀 공허의 감정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을 때까지는 정리가 필요했다. 마음을 냉장고 열 듯 꺼내어 보면 남편에게 결핍이나 부족을 느낄 만한 건 없었다. 가정에 충실한 남편은 술이나 도박 문제로 속을 섞이거나, 위험을 감수하며 수안 좋은 사업을 벌이려는 야망이 강한 타입도 아니었다. 매달 들어오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급여에 만족했으며 비교적 집에 일찍 들어와 주말에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나를 대신하여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요리를 해주었고, 생활비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주었다. 때론 내가 좋아하는 카레나 초밥을 먹으러 가자며 외식을 제안한다. 무엇 하나 흠결로 꼬집을 게 없는데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채기처럼 얹혀 있어서 난감했다. 부부 관계란 주어진 역할을 충족한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다. 대단한 이벤트를 선사하거나 달아오를 만큼 뜨거운 고백을 주고받는 연인과는 카테고리가 다르지만 평안한 안정이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한다. 난 남편을 바라볼 때 대칭이나 균형이 맞는 이미지를 볼 때와 비슷한  평화를 느꼈지만 그건 나와 별개로 이루어진 이타적 세계였다.  난 그 세계를 조용히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었고, 망망대해의 섬처럼 홀로 부유하고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일정 거리를 유지했고 난 다가갈 수 없었다. 


 설렘이나 즐거움은 가끔 일어났다 소거되는 한태의 소치이지만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부부 사이에는 지루한 게임처럼 반복적인 나날이 이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을 어떻게 타개하거나 넘기느냐가 관건이었다.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일부러 이벤트를 만들었다. 결혼기념일에 호텔에서 식사를 하거나 도회지에서의 캠핑을 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그럭저럭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며 관계를 완만하게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지만 이따금 남편은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타인과의 관계 설정이나 유지에 피로감을 느끼는 그가 결혼을 선택한 건 이례적 일이었다. 왜 나와 결혼했느냐는 물음에 대해 선입견 없는 무해함이 본인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아서 좋다고 말하는 정직한 남자였다. 로맨틱이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다며 혀를 차면 남편은 계면쩍게 웃었다. 신소리나 빈말을 하지 못하는 그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남편은 말했다. 타인과의 접점 없이 골방에서 틀어박혀 살 수 없을 텐데, 자신에게 쉼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건 내게 반지와 함께 건넨 프러포즈 편지의 한 단락이었다.  진솔한 편지에 마음을 열고 결혼을 승낙했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우린 서로를 달아오르게 한 적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뜨거운 열의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맞는 건지에 대해서는 여러 남자들과 연애를 하고, 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유지한 뒤에도 알 수 없었다. 약간의 열기로 유지되는 결혼의 좋은 점이 있다면 큰 다툼이 없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거나 헤아리는 여유가 있는 것도 이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두 사람은 날씨나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종류도 비슷했다. “오늘 기분이 처지는데, 당신은 어때?” 내가 비 오는 창문 앞을 서성이면 남편은 수긍하며 비 내리는 날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이의 선곡은 빗발이 잦아들 때와 어울리는 평화로운 재즈 곡이었다. 가령 빌 에반스의 ‘Here’s That Rain day’나 쳇 베이커의 I fall inlovetoo dasily 같은. 난 그보다는 세찬 빗줄기를 바라보는 처연한 여인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녹진한 목소리를 좋아했다. 보기와 달리 진한 여운을 남기는 노래에 매료되는 나에 대해 남편은 십여 년을 같이 살았어도 당신의 취향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적어도 10년 더 있어야 파악될 것 같아, 남편의 말에 난 웃었다. 아직 내가 여인으로서 당신에게 호기심이나 물음표를 일으킬 만한 지점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처럼 연중무휴로 이어지는 부부 관계는 언제든 문을 열고 드나들 수 있는 만만한 사이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적어도 난 24시간 편의점이나 연중무휴의 마트 같은 사이는 되고 싶지 않아. 서로에게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기약할 일 없는 관계만큼 불행한 건 없어. 난 하루 세 시간 정도 열었다 닫는 섬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편의점 정도의 희소라고 까다로운 포지션을 유지하고 싶어. 이곳에서 무언가를 사려면 시간을 엄수해야 하고 지키지 못하면 못 먹어서 아쉬울 때도 있겠지. 한낱 편의점에 불과한데, 만만하게 다닐 수 없는 곳. 서로에게 약간의 불편함은 있어야 한다고 봐. 십 수년을 함께 가야 하는 특수한 관계에서는 일부러 느슨해지는 텐션을 당기는 거야.” 내 말에 남편은 “그것도 그렇네.”하고 동의하며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쓸었다. 대체로 우리의 대화는 나의 감상이나 생각 위에 남편의 가벼운 공감으로 끝맺었다. 물론 그 반응은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달리 탁구공이 튀어올라 허공에서 주고받을 때의 재기 발랄한 즐거움이나 명랑함과 거리가 멀었지만, 그것이 남편 나름대로의 열띤 표현이라는 것을 헤아리게 됐다.


 난 남편을 이해하고 싶었다. 속내가 읽히지 않는 그 사람을 헤집어 아내라는 조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나라는 여자에 대한 진심을 뜰채로 길어내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짓는 사늘한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굳어졌던 얼굴이 희색이 돌기 시작할 때 그에게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읽고 있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문제의 노트가 놓여 있었다. 간단한 메모나 단상을 적은 기록이라고 설명했으니 아내인 내가 훑어보는 정도로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진 않을 것이다. 매일 학교, 집을 오가는 남편의 일상에서 기록할 만한 일에 무엇이 있을지 의아해서 공연히 궁금증이 일었다. 어느 한날에 넌지시 궁금증을 갖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신이 자주 손에 쥐고 펼쳐서 써 내려가는 노트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남편은 잊으면 안 될 것들을 적어두는 메모장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가볍게 넘겼다. 부부 관계라 할지라도 지갑이나 휴대폰을 보는 일 따위는 지향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이의 노트만큼은 주시하게 됐다.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주제는 없을 것이라 미리 단정하며 노트를 펼쳤다. 난 나의 성실하고 온건한 남편이 내게 상처가 될 만한 몹쓸 일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령 중년의 남자가 하룻밤 실수로 벌이는 일이나 여자 문제도 그 사람에게선 상상할 수 없었다. 


 서수희. 남편이 단정한 글씨로 적어 내려간 문장에는 그 이름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 귀에 익숙한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 여자에 대해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옛 사진첩에서 남편과 같은 동아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남편보다 두 살 어린 같은 과 후배였다고 들은 적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젊은 남편이 있었다. 그 곁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와 묘한 기류가 풍겨 물었던 적이 있었다. “둘 사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대학 때 여자 친구였어?” 남편은 잠깐 만났다는 정도로 설명하고 말을 돌렸다. 잠깐, 잠깐이라면 어느 정도 기간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대학 시절 연인과 관련한 추억을 파헤치는 일이 유치하게 여겨져 말을 아꼈다. 그 뒤에도 난 종종 사진첩에서 봤던 여자를 떠올렸다. 서수희라는 여자의 이름을, 남편의 어깨에 다정하게 기대어 나를 보며 웃는 배꽃같이 환한 미소를. 


 남편의 첫 일기가 시작된 건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결혼기념일.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념일에 꽃을 사 오는 일이 없던 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프리지어를 내 가슴에 안겨준 날.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왜 갑자기 꽃을 사 왔어?”라고 물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재킷을 받아 들었을 때 스치듯 나던 화이트 머스크 향의 은은한 향수가 꽃내음과 섞여 달큼한 향기가 감돌았다. 나의 물음에 남편은, “결혼기념일이니까.”라고 말하며 별다른 이유는 덧붙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남편은 집 안의 분위기를 바꾸기 좋을 것 같다는 명목으로 여러 종류의 꽃을 사 왔다. 차분한 표정으로 안겨주는 꽃을 물꽃이 하면 시종일관 무기력하게 침잠해 있던 마음도 눅어지곤 했다. 무뚝뚝하더라도 고압적으로 가장 행세를 하거나 위세를 떨지 않는 남편에게 만족감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지나친 예민함의 발동이라고, 그를 남편으로서 존중하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게 필요하다며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마음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남편이 건네는 꽃에서 여러 의미를 발견했던 나이기에 꽃집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땐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세게 뛰었다. 남편의 일기의 시작과 끝은 모두 서수희라는 여자가 화두로 등장했다. 그녀를 우연히 만난 날,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한 요량으로 샀던 프리지어. 그 향기를 기점으로 일기는 기록되었으니 이건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내가 그토록 간절히 알고 싶었던 남편의 내밀한 속사정이 쓰인 지극히 사적인 기록물이었다. 난 잠시 멍한 표정으로 눈에 담겨 어른 거리는 이름을 입으로 몇 차례 중얼거렸다. 동물적 감각이 발동하여 감지할 수 있는 건 다급하게 집을 나간 남편이 향한 곳에 그 여자가 있을 거라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기묘한 염려가 섞여 있는 호기심을 자초하여 밝혀낸 뜻하지 않은 진실 앞에서 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분명한 건 그 여자에게도 가정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은 까닭 없는 바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다음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비난해야 마땅한 행동을 했다며 남편을 몰아세워야 할지, 평생 속죄하는 심정으로 내게 헌신하라며 앞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살펴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수희라는 여자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여러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상상했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난 나의 생활의 또 다른 질서로 자리 잡힌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도시 모르는 상황에서 일기를 마저 읽기를 관두고 표지를 덮어버렸다. 그가 자리에서 나섰던 때와 동일하게 보이도록 책 옆에 비스듬하게 노트를 내려 두고 방을 나왔다. 반쯤 열어둔 서재 문의 각도까지 남편이 있던 때와 비슷하게 유지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얹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가슴께를 주먹으로 꾹 눌렀지만 묵직한 게 맺혀 있었다. 난 테이블에 삭연히 앉아 그가 음악을 틀어주거나 요리를 해주던 부엌과 거실을 훑어보았다. “사랑한다는 이유와 별개로 지켜야 할 도의가 있으니까. 당신은 당신대로, 난 나대로 함께해 온 사람을 본래 없던 일로 치부하여 정리할 순 없다는 걸 잘 알잖아.” 그건 수희라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짊어진 무거운 책임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그도 아니라면 훗날 우연을 가장한 호기심으로 이 일기장을 펼쳐볼 나에게 최종 선택을 양도하려는 물음일까.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남편은 돌아왔다. 그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남편은 어두운 거실 한편에 조명조차 켜 두지 않은 채  앉아있는 나를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아직 안 잤어?”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같이 자려고.”

“미안해, 아까는 친한 친구가,”


난 집으로 오는 길에 준비해 두었을 남편의 핑계를 듣고 싶지 않아 말을 끊고 할 말만 했다.


“피곤할 텐데, 씻고 와. 그만 자고 싶어.”


난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앞질러 침실로 향했다. 침대 한편에 모로 눕자 벽면에 붙어있는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흰 드레스를 입고 정면을 보며 환하게 웃는 내 곁에서 남편은 경직된 표정이었다. 눈은 웃지 않는데, 입꼬리만 올라가 있었다. 자초하여 선택하였어도 사랑이 기반이 아니었다는 사실, 내게 매 순간 남편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진심은 다른 곳에 두었다는 것은 일종의 배반이었지만 비난하기도 애매했다. 단지 그의 마음자리에 나라는 존재를 놓아둘 위치조차 애매하다는 사실이 처연했다.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에게 느끼는 공허가 나의 과열된 예민함이라고 치부하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까?    씻고 나온 남편이 침대가에 앉아 물었다. 


“자고 있어?”

“아직.”


난 눈을 감고 말했다. 


“왜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남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난 무엇을, 이라는 질문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사람에 대해 알면서도 묻지 않고 있는 거 알아.”


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남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내 딴에는 알지 못하도록 신경 써두고 나왔으나 어딘가 허술하여 집을 나가기 전과 달라진 방 안의 분위기를 기민하게 눈치챈 모양이었다. 허락 없이 본 건 미안하다고 말하자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당신이 느낀 불안에 대해 내가 책임감 있게 해명하거나 해소해주지 못했으니 노트를 본 거겠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건 가까운 사이에도 예의에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단 한 번도 그런 적도 없었고.” 


난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계속 궁금했어. 내가 느끼는 불안과 결핍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먼저 말하지 못했지만. 막상 알아버린 뒤에는 차라리 몰랐을 때가 나았구나 싶어.”


남편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어떠한 말도 진실을 마주한 나를 위로하거나 설득하려는 변명으로 들릴 것만 같아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은 아니었다는 거 알아. 그렇지만 그 여자가 주는 설렘이나 뜨거운 온정과는 다른 형태로 난 당신을 채워줬어.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 더없이 완벽하다고 만족할 만큼 황홀하진 않더라도 식지 않는 우리만의 무언가, 부부로서 갖게 된 끈끈한 결속력 같은 것. 우린 더 이상 남녀가 아니라 부부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남편은 가만히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가족이 됐다는 거야.”


난 그 말을 하고 침대에 돌아누웠다. 남편은 그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말과 당신에게 상처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두서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다 이내 깊은숨과 함께 모든 말을 삼켰다. 


“아들이, 갑자기 아팠대. 남편은 출장 중이라 집에 아무도 없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아닌 걸 알면서도 연락을 했던 거야.”


난 말없이 눈을 감았다.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졸려. 자고 싶어.”


난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수면의 세계로 의식을 밀어 넣었다. 더 이상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그를 비난하고 따지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응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만한 기력도 없었으므로 깊은 잠을 택했다.          




상밀하고 꼼꼼한 기질을 가진 남편과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거나 때로 음악을 틀어주었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었다. 우린 그날의 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주 가끔 남편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허공을 보거나, 책무감이 감도는 무거운 시선으로 나를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난 시선을 피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었다. 여전히 이 남자는 나의 남편이었고,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불안을 심화시키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고 그 행위에는 꽃을 사 오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보다 활짝 열려 있는 서재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을 넘기는 소리와 피아노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남편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무언가를 적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일기를 쓰는 대신 책을 열심히 읽었다.  다만 시일이 꽤 지난 뒤에 그 여자에 대해서는 지나가듯 물었을 때 남편은 느슨했던 몸을 고쳐 앉으며 천천히 "네가 불안함을 느낄 만한 일은 만들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뜨겁게 타오른 적도, 근사하게 반짝인 적도 없던 터라 무탈히 넘길 수 있었던 거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글쎄, 그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언젠가 가족이 되거나 헤어지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밟는 게 수순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만큼 이성적인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 후로도 남편은 내게 그 일에 대한 죄책감에 의식적으로 잘해주려 애쓰거나 작위적인 노력을 하진 않았다. 단지 나에게 머무는 시선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다. 진한 스킨십이나 입맞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 좋아하는 커피 내려놨어.”라던가 “날이 화창한데 드라이브 가지 않겠어?”라는 말을 통해 부부 관계의 친분을 표현했고 난 그것에 대체로 만족했다. 더 이상 여인의 시선으로 남편을 보지 않게 된 건 내가 그와 한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조건이었다. 남자가 아닌 늘 곁에 머무는 남편으로, 매일 같은 이불을 덮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 주거나 미래를 도모하는 안정감 있는 가족이 되기로 마음을 바꾸자 그이의 서재 문이 어느 정도 열렸느냐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날씨가 좋은데,  음악 들을래?" 


따가운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채도 높은 하늘을 창밖으로 보며 남편은 기지개를 켰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 어울리는 풍부한 선율이  주는 따뜻함이 그리울 땐 우리가 듣는 음악이 있었다. 재생 버튼과 함께 선율이 흘렀다. 그 소리는 거실을 지나 침실로 다시 부엌으로, 그다음은 묵직한 공기로 들어찬 서재로 향했다. 빠르지 않은 템포인데 들을수록 깊은 울림이 있는 쳇 베이커의  Autumn Leaves.  이 곡은 제목 또한 낙엽이라 가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언급하게 된다.  집안 곳곳을 채우는 색소폰의 선율은 붉게 물든 단풍보다는 사위어 바닥으로 떨어진 낙엽을 형상화한 것 같다.  남편은 읽던 책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눈을 감았다. 난 그런 남편의 완만한 옆얼굴을, 끄덕이는 고갯짓을 느끼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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