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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거울 속의 낯선 얼굴

by 라비니야

출근길 지하철 유리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낯설었다. 어제와 같은 얼굴인데, 표정의 방향이 달라져 있었다. 눈썹이 얼굴의 기세를 바꾼다더니, 정말 그런가. 그 사소한 선 두 줄이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어떤 얼굴은 하루를 버티는 갑옷이라는 걸. 그날의 나는 그 갑옷을 막 받은 사람처럼 몸이 낯설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팀장이 먼저 말을 걸었다. “자영 씨, 오늘은 인상 좋아 보이는데?” 칭찬인가 싶었지만, 그 말에는 늘 ‘평소엔 별로였는데’가 붙어 있다. 나는 웃으며 “그런가 봐요” 하고 넘겼다. 웃음이 내 의지보다 먼저 나왔다. 내 얼굴이 나를 앞질러 반응하고 있었다. 그게 조금 무서웠다.

오전 내내 메신저가 울렸다. 클라이언트 수정 요청, 상사의 피드백, 후배의 확인 메시지. 단어들은 전부 정중했지만, 문장 속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이건 이렇게 수정 부탁드립니다 :)’ 그 웃음표시 하나에 얼마나 많은 체념이 들어있는지, 그걸 아는 사람만 웃는다. 나는 문장들을 수정하며, 모니터 속 글자보다 더 조심스레 내 표정을 관리했다. 얼굴이 단단해야 말도 단단해진다. 회사는 그런 곳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서주가 내 자리에 다가왔다. “밥 먹었어?” 서주는 입사 초반부터 나를 챙겨줬다. 회사에서 7년은 버틴 선배, 손목에 언제나 작은 반창고가 붙어 있는 사람. 그녀는 내 일상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이요.” “그럼 같이 가자. 오늘은 사장님이 외근이라 조용할 거야.” 그 말은 마치 ‘이제 좀 숨 쉬자’라는 뜻처럼 들렸다.

식당은 사무실 근처 작은 한식집이었다. 서주는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묻지도 않고 비빔밥 두 개를 주문했다. “네가 요즘 얼굴이 좋아졌어.”

그녀가 젓가락을 나누어주며 말했다.

“좋아졌다기보단 그냥... 눈썹을 바꿨어요.”

“눈썹?”

“네. 호랑이 눈썹이라고...”

내가 말끝을 흐리자 서주는 잠시 웃었다.

“그래, 그런 게 필요하지. 여자는 자기 얼굴을 가끔 새로 고쳐야 해. 남들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믿으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밥과 고추장을 골고루 섞었다.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스스로 믿으라고. 믿음이 얼굴로 옮겨 붙는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난 적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서주는 무심하게 덧붙였다.

“근데 조심해. 회사엔 얼굴의 변화를 괜히 읽으려는 눈이 많아.”

“읽으려는 눈이요?”

“뭔가 달라 보이면, 무슨 일이 있나부터 궁금해하거든. 좋게 보는 사람보다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이 많아.”

서주는 말하면서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엔 오래된 피로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어제 가게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보는 힘.’ 회사에서 자신을 보는 힘을 가진다는 건, 그 자체로 저항이다. 나는 그걸 이제야 배워가고 있었다.

오후 회의가 길어졌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중에서도 황 부장은 유독 내 표정을 오래 살폈다. 그가 말했다.

“자영 씨, 지난번보다 낫네. 뭔가 선이 또렷해졌어.”

그 말이 내게는 칭찬이라기보다 ‘변화 감지’처럼 들렸다. 나는 웃으며 “감사합니다” 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내가 바꾼 건 눈썹뿐인데, 왜 사람들은 내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걸까.

퇴근 무렵, 거울 앞에 서서 립스틱을 바르다 말았다. 거울 속의 얼굴은 여전히 나였지만, ‘나 같지 않은 나’가 서 있었다. 호랑이 눈썹은 얼굴에 생기를 주었지만, 그 생기가 조금 낯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얼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시험하는 얼굴 같았다. 나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했다. 그때 서주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스스로 믿으라고.’ 믿음은 화장보다 어렵다. 믿음은 아무 데도 팔지 않는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을 지우며 눈썹 부분을 피했다. 면봉 끝에 묻은 파운데이션이 희미하게 닳아나갔다. 내 얼굴 아래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화장을 벗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얼굴. 그 얼굴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조금은 달랐다. 오늘 하루를 견딘 얼굴이었다.

세면대 위 거울에 김이 서렸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 김을 닦았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 오늘은 괜찮았어.”

그 말을 듣는 건 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진짜 위로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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