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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Jan 19. 2024

제품을 팔려면 제품을 설명하지마라

닥터 세일즈 02

고객에게 줄 것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고객에게 줄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준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꼭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이해이다. 내가 주로 다룬 것은 공학용 소프트웨어이다. 적어도 해당 소프트웨어에 대한 활용능력이 중상위권 수준은 되어야 한다. 고객이 소프트웨어의 사용자이거나 사용자가 될 후보들이기 때문이다.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고객이나 잠재고객 중에는 프리세일즈 엔지니어가 얼마나 아는지 확인해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려운 이론이나 고급 기술 등을 일부러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 잘 대답해 줄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영업 기회의 시작점이 되어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공부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나의 경우, 짬이 날 때마다 관련된 논문을 리뷰하거나, 세계 각국에서 이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들을 읽고 공부한다. 그리고 특히나 신기능이 나오면, 반드시 먼저 테스트해 보는 편이다. 사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 스타일의 성격도 한몫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제품(소프트웨어)을 소개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한다.

관심이 있어서 나를 부르고, 제품을 소개해달라고 한 정도의 고객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전 조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도 나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 미팅 중에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나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보인다.

‘이 사람은 알긴 잘 아는 것 같군.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



잘 준비한 세미나의 힘

고객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미나다. 잘 준비된다면, 향후 영업기회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가성비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준비가 안되면, 어설픈 제품 홍보 시간처럼 여겨지게 된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처음 기술 세미나를 진행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에서 만든 영문 원본 PPT를 갖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내용은 굉장히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소개였고,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내용이 강조되어 있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생기는 영역이 어떤 것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산업군에 속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였다. 그것도 실제 데이터나 측정치로 검증이 된 사례를 보여주면,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우리가 어떤 유익이 있다는 얘기죠?’

이런 식의 까칠한 피드백을 듣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세미나 자료를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좋은 내용이거나 필요한 부분이라도 내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으면 과감히 생략하기도 했다. 생동감 있고 자신감 있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피드백이 점점 좋아졌다.

한 회사는 몇 개월 텀을 두고 두 번째 방문하게 되었었는데, 첫 번째 방문 시 세미나를 들었던 사람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달랐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혹시 자료를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난번엔 강의나 세미나가 아닌 제품 홍보라고 느낀 분들이 이번에는 달라진 피드백을 준 것이다. 이 정도의 반응이면, 효과적인 세미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세미나 준비의 실전

세미나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고객에 대한 공부이다. 이미 우리 제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이제 고객사의 제품에 대해서 알아야 할 차례다. 같은 소프트웨어를 팔려고 하지만, 상대방 회사가 세라믹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농업용 장비를 만드는 회사라면 완전히 다른 DNA를 갖고 있다.

고객사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고개사의 주력 제품에 대해 이해한다.

2. 제품의 생산 공정을 조사하고, 우리 소프트웨어가 커버할 수 있는 공정이 어떤 부분인지 명확히 한다. (커버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3. 위에서 정리된 공정에서 흔히 발생되는 불량이나 기술적 이슈가 무엇인지 조사한다.

4. 3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조사한다. 유사한 업종 혹은 동종 업계에 우리의 기존 고객사례가 있다면 최고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만약 없다면, 유사한 연구 사례 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아무리 좋은 기능과 자랑하고 싶은 장점이라도, 해당 업종에서 관심 없을 만한 사항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준비된 세미나는 이른바 맞춤형 세미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유사 업종은 유사한 공정과 그에 따른 이슈를 갖고 있으므로 이렇게 준비된 자료는 요긴하게 재사용될 수 있다. 한번 만들 때 고생하면 두고두고 좋은 자산이 되어 준다.

세미나를 할 때의 태도나 자세, 멘트 등까지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에서 다뤄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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