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Dear. blank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Jan 31. 2024

어째서 네 목소리를 먼저 잊어버리게 되었을까

 어제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네가 했던 말, 우리가 장난치던 순간, 네 표정이 하나씩 기억나는데 네 목소리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거야. 길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그게 얼마나 슬프던지.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하던데 나는 어째서 네 목소리를 가장 먼저 잊어버리게 되었을까.      


 언젠가 네가 그런 말을 했잖아. 나를 다 잊을까 봐 무섭다고. 나를 완전히 잊은 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게 두렵다고. 그 마음이 참 애틋하기는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어. 헤어짐에 있어서 잊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무덤덤한 표정으로 등 돌리면 안 되는 거였나 봐.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표정을 지을 걸 그랬어. 나는 이제야 네 모든 것을 잊게 될까 봐 두려워.      


 밑으로 밀려난 우리의 통화 목록을 기어코 찾아봤어. 그리고 한참을 고민했어. 네 목소리를 들을까, 말까. 당장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 봐, 처음부터 다시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났어. 그래서 끝내 안 들었어, 네 목소리. 나는 왜 이렇게 혼자 남겨진 순간에도 너에게 미안해지는 걸까.     


 너는 나를 얼마만큼 잊었어? 나처럼 목소리부터 잊었을까, 아니면 모두 잊어버렸을까.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너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또 너를 기억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천천히 잊혀지면 안될까. 너에게서 나도, 나에게서 너도.

이전 03화 너와 같은 표정으로 너를 기다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