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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erin Sep 30. 2015

소파에서 쉬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버섯, 응? 

제목 보고 클릭하셨나요? 

외국어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요?

정말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배운 언어를 사용해 말할 때는 내 생각과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어떤 실수를 하셨는지가 정말 궁금해지네요. 


우선 저의 실수부터 빵! 공개하려고 합니다. ^^


제가 한국어 선생님을 하게 된 계기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몇 개월 지낸 적이 있었고요. 

학교 다니면서 수업도 듣고 독일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죠. 어느 날 독일 친구가 저에게 어제 뭐 했냐고 묻더라고요.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저는 교회를 다녀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다녀왔다(“Gestern bin ich in die Kirsch gegangen.”)고 말했지요. 그런데 친구가 웃으면서 “그럴 수는 없는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진짜야! 교회 다녀왔어!(Warum denn? Ich bin in die Kirche gegangen.)”라고 다시 이야기하는 순간 깨달았어요. 

여러분 중에 독일어를 하시는 분들은 위의 문장을 보고 이미 웃으셨죠?^^ 첫 번째 문장의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밑줄 친 단어는 Kirsch(체리)라는 뜻이에요. 두 번째 문장에 있는 철자가 비슷한 Kirche(교회) Kirsch(체리)를 제가 헷갈려서 말한 거지요. 

다시 말해 저는 


어제 체리에 다녀왔어.”


라고 이야기한 거죠. 그러니 친구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한 거고요. 

아직도 기억 나는 것이 제가 그때 의미가 헷갈려서 잘못 말한 게 아니었어요. 키르쉬가 체리, 키르헤가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그냥 발음이 꼬여서 잘못 뱉어 버리게 된 거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외국어를 배우면서 겪을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여겼었는데요, 지금 제가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때의 저의 실수가 이해되고 덕분에 학생들의 실수와 오류들이 더 잘 이해되곤 합니다. 

뜻은 전혀 다른데 발음이 비슷해서 다른 단어를 말해 버리는 바람에 듣는 사람이 오해하게 되는 상황은 어떠한 외국어를 배우든지 반드시 꼭 하는 실수들인 것 같아요. 



한날은 하나, 둘, 셋, 넷을 가르치고 한 일주일 정도 지난 때였어요. 

복습할 겸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에게 세 보라고 말했는데요, 

하나

다섯

버섯

일곱


응? 버섯? mushroom? 

이런 재미있고 귀여운 실수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지더라고요. 


자, 지금부터 쉬하는 사진을 한번 보여드릴게요.

첫 번째 사진을 보시면 소파에서 쉬고 있는 여자의 그림이 있지요. 시간 표현을 배운 학생들이 그림과 시간을 보고 문장을 써야 하는 퀴즈였습니다. 이 단계는 가장 초급 수준이고요, 한국어의 '-(스)ㅂ니다' 체까지 배운 단계였습니다. 시간을 한국어로 써야 하고 동사의 기본형인 '쉬다'와 '-(스)ㅂ니다'를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모국어의 문장 구조가 전혀 다른 스위스 학생에게는 아주 어려운 미션이지요. 


거두절미하고 이 학생의 답부터 공개합니다. 


"오후 열 시 이십 분에 쉬합니다."


많은 맞춤법 실수들을 봐 왔지만 두 번째로 빵 터진 오류였습니다. "쉬습니다"라고 쓴 학생도 있었지만 마침 한국어에 "쉬하다"라는 동사가 있어서 선생님들에게 정말 큰 재미를 선사했던 에피소드입니다. 


그럼 첫 번째로 빵 터진 실수가 뭔지 궁금하시겠지요? 첫 번째로 재미있는 맞춤법 오류는 긴 말하지 않고 사진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년을 드십니다."


네? '-'????


현재 시각 10시 20분. 여러분도 저도 이제 쉬하러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


마지막으로 몇 자 덧붙입니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외국어는 알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선생님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 속으로는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의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학생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다른 나라 언어의 특징이나 문장 구조 등을 어느 정도 아는 것, 적어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갖추었으면 하는 것이 아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에 포함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반드시 영어나 중국어 등 내가 주로 가르치는 학생들의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내 관심과 흥미가 있는 언어를 공부하시면 돼요. 목적 자체가 외국어 실력 향상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를 낯설게 보기 위함이거든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언어를 외국인 학습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면 학생들에게 보다 쉬운 설명과 좋은 예를 제시해 주기가 힘들어요. 


한국어 낯설게 보기를 좋아하는 


한국어 선생님 이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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