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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자주 감정을 건드리죠.
눈부신 햇살 아래 농도 깊은 더위를 닮았거나, 고요한 강물을 닮았거나, 휘몰아치는 소나기를 닮은, 더 아름다운 구절로 이뤄진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 세 가지를 추천합니다.
1 <여름과 루비> 박연준
우리가 지닌 유년 시절, 그 시절의 분위기,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제공합니다. 마치 뉴진스가 제공한 허위 유년시절로 우리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겪어본 것만 같은 장면들이 그려집니다.
제목 그대로 여름과 루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으로 서로의 삶의 궤도에 들어온 친구, 우정, 믿음, 상실, 슬픔, 그리고 사랑 같은 것들. 이 소설은 모든 처음에 대하여 여름이란 계절로 감각합니다.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공기 같은 이야기입니다. 무덥고 습한 공기처럼 우리가 경험한 선명한 기억이 피부에 달라붙습니다.
박연준 시인이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여름에 닿아 있는 모든 감정에 대해 말합니다. 시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2 <입속 지느러미> 조예은
지금처럼 축축하고 습한 계절에 더욱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여름은 언제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계절이죠. 몸이 쉽게 지치고 마음이 느슨해지는 만큼, 이질적인 것들이 스며들기 쉬운 틈이 생깁니다. 그 사이로 이 소설은, 우리도 모르게 ‘다른 존재’를 내 안에 심어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The shape of water> 인데요, 소설 안에서 직접 언급할 정도로 서로 닮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크리처물에 사랑을 곁들인 이 이야기 속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이 물처럼 흐려집니다. 여름에 흐물흐물해지는 몸처럼 마음까지 경계 없이 허물어져 내리죠. 어느 시점 포텐이 터지면서 사랑의 모양이었던 소설은 영화 <아가씨>를 연상케 합니다.
조예은 작가 특유의 몽환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공포와 슬픔, 사랑과 성장 그 이질감이 뒤섞인 감각의 여름을 혀끝으로 다시 더듬어보게 됩니다.
3 <급류> 정대건
그 여름의 속도, 그 시절의 맹렬함을 담은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춘이란 원래 급류와 같이, 그 당시엔 발버둥 치느라 몰랐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만큼 뜨거웠던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제목처럼 빠르게 휩쓸려가듯 단숨에 읽히는 소설입니다. 뜨겁고, 어설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시절, 그 모든 감정이 폭우처럼 쏟아져 아무 말도 못 한 채 휩쓸려 가는 시간을 그려냅니다. 청춘이 겪는 모든 것이 이 여름이란 계절에 터져버리죠. 그들과 함께 마음이 긁히기도 하고, 답답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소설 속 급류가 나에게도 살짝 스쳐 지나간 기분을 느꼈습니다. 가볍게 집었지만 생각보다 묵직했던 이야기입니다.
정대건 작가는 그 불안하고 복잡한 청춘의 시기를 보여주는데 꽤 솔직합니다. 서사와 인물 묘사가 살아있어서 지루할 틈은 없었으나 우울한 시기라던가, 감정 동기화가 잘 이루어지는 분이라면 읽으면서 힘들 수 있으니 주의를 요망합니다.
이 세 권의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름을 담고 있지만,
마음을 무너뜨리고, 마음을 데우고, 오래된 나를 불러내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여름이 우리에게 주는 변화를 느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사랑을 잃은 마음을 쓰다듬고,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말하고, 지나간 계절 속 나를 다시 꺼내주기도 하는 감정들을 이 책들 속에서 조용히 건져보실 수 있게 되실 겁니다.
항상 여름의 기억이 미화되는 이유는, 무더운 날씨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주고 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도 그 감정의 여운은 책갈피처럼 오래 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