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가 물건들과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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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집에는 현재 쓰고 있는 물건들과, 언젠가는 쓸 것 같은 물건들과, 쓰지는 않지만 선물 받은 물건들과, 이미 고장 났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뒤섞여있죠.


뿐만 아니라, 그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보부상 스타일입니다. 언젠가 필요할 것만 같아서 말이죠. 실제로 가방에서 빼두면 정말이지 꼭 필요한 순간이 생깁니다.


정리를 시도했던 순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위험한 행동입니다. 정리하다가 본 물건으로 추억여행을 떠나기 십상이거든요. 그럼 그날은 추억여행만 내내 하다가 끝이 나버립니다. 결국 다시 제자리에 물건을 두고, 버리려고 상자에 담아뒀다가도 며칠 후 다시 꺼내 보고, 버릴까 말까 다시 쓸 일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건 너무 아까운데? 하며 극심한 내적 갈등과 합리화에 시달립니다.


서랍 깊숙이 모아둔 케이블 선은 왜 이렇게 많은지, 포장도 뜯지 않은 볼펜과 노트, 입지 않는 옷들, 작동하지 않는 시계, 2G 시절 쓰던 옛 휴대폰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바람이 불던 적도 있었죠.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남기고 물질의 소유를 단순화시키는 것. 하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제게는 '필요한 것'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요. 어제까지 쓸모없어 보이던 그 케이블이 오늘 갑자기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순간을, 5년 전에 사놓고 잊고 있었던 그 옷이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구세주가 되는 경험을 말이죠.


물론 이런 삶에도 대가는 있습니다. 찾는 물건을 못 찾아서 허둥대는 시간, 이사할 때마다 늘어나는 짐의 무게, 가끔 물건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이 모든 물건들이 제게 주는 안정감입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편안함 말이죠. 고장 난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그 시계를 차고 다녔던 시절의 저를 기억하게 해 줍니다. 2G 휴대폰은 더 이상 전화를 걸 수 없지만, 그 안에 저장된 흐릿한 사진 몇 장은 그때의 감정을 선명하게 되살려줍니다.


어쩌면 저는 물건을 모으는 게 아니라 시간을 모으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각각의 물건에 스며든 순간들, 그 물건과 함께했던 이야기들. 미련일지 몰라도 그것들을 버린다는 것은 제 과거의 일부를 지워버리는 것 같아서 쉽지 않습니다. 각각의 물건은 제가 걸어온 길의 증거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을 위한 준비물이니까요.


그러니 저는 오늘도 가방에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들을 넣고 집을 나섭니다. 혹시 몰라서, 혹시나 해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또 다른 물건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이것이 물건들과 함께 사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완벽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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