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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미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때론 용기가 필요합니다. 과학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나는 미신을 믿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마치 시대착오적인 고백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미신을 믿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밤에 손톱 깎으면 안 된다.", "밤에 휘파람 불면 뱀 나온다."라고 한 말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새해 첫날 일출이나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시험 전날에는 미역국을 먹지 않습니다.
이런 저를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미신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느끼는 인간의 불안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정감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 행동인 것이라고 해두죠.
복숭아나무는 예로부터 악귀를 쫓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는 이야기를 다들 아실 테죠. 복숭아나무는 동양 문화권에서 수천 년간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여겨져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검이나 젓가락, 부적 등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어져 왔습니다.
어느날 제가 복숭아나무젓가락을 주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젓가락을 주문하게 된 계기는, 직장 상사가 악령에 씐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아 퇴행적인 행동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살아있는 생물 취급과 더불어, 남에게도 그 생각을 강요했죠. 본인과 인형을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인형을 잃어버렸을 땐 회사에서 울다가 지쳐 조퇴를 하기도 했습니다. 식탐과 소유욕은 어찌나 강한지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며 챙기고, 그게 뭐든 본인 먼저 달라고 소리치기도 했고요.
정신의학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유아 퇴행에 관한 자료도 찾아보고 주변의 심리학 전문가들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이거 혹시 몸에 영가가 깃든 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오죽하면 그랬겠냐만은, 복숭아나무젓가락을 놓은 것이 실제로 악령을 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미신을 믿는 것을 후진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신은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지혜와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죠.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에서, 미신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작은 희망을 줍니다.
복숭아나무젓가락을 주문했던 그날의 저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많고, 그런 일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겠죠. 복숭아나무 젓가락은 저의 그런 작은 대처법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미신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작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요.